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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1부,.2005년 6월20일부터2005년 8월18일까지
¿어디서 왔니?

지구반대편 남미 땅에 발을 디디며
12시간 비행. 브라질 상 파울로 도착..도대체 오늘이 여기가 5월31인가? 아니면 5월30일인가 ? 정신이 헤롱하다 짧은 시간동안 유리너머로 본 브라질 공항의 이미지는 매우 서구화된 이미지였고 브라질에서  3시간 비행하여 드디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정신이 없다. 공항의 분위기는 어둡고 스산하다. 짐이 안 나오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짐은 다 나온 것 같은데 우리 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짐 보낼 때 실랑이를 했던 것이 혹시나 잘못 되지나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에릭이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장점인가.조금 기다리면 짐이 나온 댄다. 드디어 덜커덩덜커덩 일반 짐이 나오는 곳에 우리자전거가 담긴 박스가 나왔다.  아니 박스를 열어보느라고 이렇게 오래 걸린것일까 자세히 보니 JAL 항공에서 자전거 싼 박스랑 다른 박스를 열어본 것이 아닌가! 자전거 박스는 느슨하고 은근히 걱정도 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직접 여기서 뜯어 확인 후 손상이 있으면 손해배상 청구 신청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나의 의견에 에릭은 손상이 안 보인다며..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자전거 박스를 풀어 확인할 때가지 내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고 일본인이 마냥 밉게 생각되었다. 뜯었으면 제대로 부쳐 놓기나 할 것이지.

시작이 좋으면 반은 해결
세관원이 모든 6개박스를 다 열어보라고 하면 곤란한데 일단 스마일 작전을 쓰자.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이라 공항은 텅텅 비어있었다.세관원들 몇 명이 모여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한사람이
|” De Donde vienen?./어디서 왔나요한국인이지만 독일에서 왔는데요.
“ Que este todos? /이것이 전부 무엇인가요?- 여행할 자전거랑 짐입니다
“Muy Bien!! Muy Bien!”/좋아요, 좋아. 통과하세요
우리에게 아주 익살스럽게 질문을 던진 세관원은 동료 세관원들을 불러 우리가 자전거로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계획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까지 하며 무사하게 통과를 해 주었다. 나중에 교민들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부에노스를 출입하는 한국인들은 세관원들에게 많이 뜯긴다고 한다. 한국에서 음식물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음식물 반입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워 돈을 요구하거나 아예 한국 사람이 들어오면 뒷돈이 생기겠구나 한다고 하는데 우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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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공항 도착시


아르헨티나  첫 TV  방송 출연 -6월20일 11시 Telefe 뉴스
3주 내내 2틀 걸려 내리던 비가 우리가 떠난다고 하니 딱 멈추었다. 그 동안 스페인어두 조금 배웠고 날씨도 협조를 해주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들뜨고 기뻤다. 드디어 자전거로 곳곳을 돌아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너무 표현하여, 아니 흥분한 대가로 침낭을 걷어 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머리, 다리 , 허리, 무릎 타박상을 입었다. 얼마나 아프던지 지금 까지 그 무릎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하느님이 보호하셨기에 다행히도 머리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무릎에 상처가 나고 피가 났지만 아픔보다는 갈 길에 대한 희망이 더 커 자전거에 올랐다. 집 앞에서 자전거 조립하고 하는데 근 1시간 소요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준비하는 도중 방송사의 사람이 오더니 인터뷰를 신청해 오는 것이 아닌가? 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OK. 10시 30분 인터뷰, 11시 방송이랜다.일반적인 질문이었다.  어디서 왔냐? 왜 자전거로 여행을 하느냐? 아르헨티나에 대한 소감?에릭이야  유창한 스페인어로 답변이 가능하지만.. 난 더듬더듬..역시 자전거 트레일러에 강릉 시에서 제작해준 홍보 물을 단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앞에 가방에도 Republic Korea, Gangneung 로 쓰여 있어 아주 쉽게 방송에 보도 되었으니 말이다..유감스럽게도 우린 이 방송을 보지 못했다. 여행도중 방송을 보았다며 반가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송이라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한편 단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우리가 부유한 자전거 관광객인지 알고 잘 못하면 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전거에 모든 짐을 부착하고 트레일러를  타는 것이라 겁도 나고 처음 1시간은 적응하느라고 힘들기만 했다. 그리고 아침에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고 일부러 휴일을 선택했지만 역시 한나라의 수도는 무시 못하는 법이다.도로에 차량은 대단했고 오염 또한 심했다. 손하고 코 끝이 까맣게 되고 얼굴은 물론이고 깜 씨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그런데 웬일.. 버스 운전사들도 그렇고 너무나 우리들에게 관대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모두들 손 흔들고 완전히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잠깐 신호등에 서면 “ 어디로 가요? 행운을 빌게요” 등등 너무나 기분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어 아픈 것도 다 잊고 3시간쯤 달렸을까.

아사도 -따뜻한 점심 대접
배에서 꼬르륵…. 저기 보이는 것이 뭐야. 눈이 막 돌아갔다. 숯불갈비/ 아사도(아르헨티나 인들이 칭하는 숯불갈비 명칭) 아닌가?자전거를 세우고 바깥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려는데 주인 아저씨가 오시더니 우리를 손님으로 대접하는 것은 큰 영광이라며 먹고 싶은 고기는 다 고르라고 하셨다.괜찮다고 하는데도 숯불갈비랑 샐러드랑 이것저것 진수성찬을 차려 주셨다.
당신의 식당을 잊지 말라고 식당 열쇠고리를 자전거에 걸어 주시고 기념사진도 찎었다.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아르헨티나에 또 놀러 오라며 그리고 당신의 식당에 또 들리라고 당부당부 하셨다..첫날에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무지 중요하다. 일단은 사람들에게 신뢰가 쌓이고 힘들어도 힘든 지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곳의 숯불갈비는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어느 곳보다도 맛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아저씨의 사업이 더 번영하여 우리에게 베푼 친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베풀기 바랄 뿐이다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라고 불리는 숯불 갈비는 정말로 별미이다. 다른 곳의 고기도 맛있지만 부에노스산이 가장 별미라고 한다. 그 이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의 팜파 초원은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하며 겨울은 몹시 추워서 부드러운 양질의 목초가 잘 자란다고 한다. 당연히 그 목초를 먹고 자란 소는 다른 지역의 소보다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아사도는 장작불이나 숯불로 5시간 가량 고기를 매달아 복사열로 익힌 요리로  양념은 소금, 후추 ,레몬이 전부다.  게다가 고기가 더 맛있는 이유는 어미 소가  되기 전의 송아지를 잡아서 아사도를 한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아사도 없으면 삶의 희망이 없다는 비유처럼 아사도를 물먹듯이 먹으니 당연히 체격이 클 수 밖에 없다. 

빨간 손, 파란 손, 동심으로/교실에서 캠핑
Necochea 까지는 아직 많이 가야하고 도로에는  화물차량 및 버스만 많이 운행 되었다. 농장들도 눈에 띠이지 않아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해지는데 학교 건물이보였다.방학이라 학교가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마당을 보니 자동차가 한대 보이고 조그마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오늘의 잠자리는 이곳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해야지  안 그러면 길에서 무단 캠핑을 해야 할 처지가 된다. 자전거를 길에 세우고 에릭이 들어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시골에서 잠자리를 물을 때는 에릭이 하고 도시에서 숙소를 찾을 때는 내가 한다. 시골 사람들은 여자가 자전거 복장을 하고 오면 일단 놀래고 거부반응이 조금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한참 기다려도 에릭이 나오지 않더니만 마르첼라.( Marcella) 학교의  여 교장선생님과 함께 나왔다. 바깥에서 캠핑은 춥고 비가 올 가능성이 있으니 교실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가 우리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갑자기 초등학교, 중학교 때 걸스카웃 활동을 할 때 교실에서 친구들과 침낭을 깔고 잤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화장실은 모두 푸세 식이였고  밤에 친구들과  화장실 가는 것은 무지 무서워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밤새도록 교실에서 이야기하였던 무시무시한 빨간 손, 파란 손의 귀신이야기랑 다른마귀이야기를 했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그리고 무엇보다도 Marcella, Daniell (마르첼라의 남편) 그리고 네 아이를 보니 나의 동생들과 부모님이 생각났다. 어렸을 적 태백에서 아빠가 교장 선생님, 엄마가 선생님 그러니까 당시 불모지 선생님으로 부부교사가 갔던 모양이다. 내가 5살 때 일일 것 같은데도 그때 일들이 자라면서 많이 생각 났고 나의 정서에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아이들 4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니 꼭 우리 4형제가 그렇게 자랐겠지 싶은 생각에 갑자기 향수가 생기고 가족들이 그리웠다.다음날 떠나려고 하니 비가 온다며 학교에서 며칠 쉬라고 권한다. 하지만 우리는 보슬비를 맞으면 아쉽게 작별을 하고 Necochea 을 향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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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서의 캠핑

고래야! 물개야 내가 왔단다
고래.. 아니 말로만 듣던 고래를 직접 해변가에서 보게 되다니 이런 일이 고래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장난을 치는 것인지 물속에서 무엇을 먹는 것인지,고래가 한 마리도 아니고 한 대 여섯 마리가 해변 가까이에 서 보였다.난 아이 마냥 환호성을 질렀고 고래를 본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조그마한 고래는 이미 태국에서 잠수할 때 번 경험이 있지만 그렇게 큰 고래가 해변 가에서는 30-50 m 구간에서 고래를 볼 수 있었고 항구에서는 2-3 m, 운 좋은 날은 거의 1m 도 되지 않은 곳에서 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의 이름은 뿌에르또마드린이다 Puerto Madryn. 난 이곳을 사랑 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 가까이에서 태어난 이유도 있지만 난 바다를 보면 항상 마음이 편안하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1999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 된
“ 페닌술라 발데스 ( 반 섬임)Península Valdes 에 가면 펭귄, 고래, 물개, 등등 여러 가지의 동물을 볼 수 있어 관광객이 엄청 많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아르헨티나의 겨울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9월부터 3월까지는 시즌이고 고래도 더 많다고 한다. 물론 9월부터 3월까지는 숙박 비도 배로 뛴다.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마음 좋은 천사들이 항상 함께 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은 숙소를 찾아가니 방학이라 방이 꽉 찼댄다.날씨도 좋고 고래도 보이는 바다에서 캠핑을 하고 싶어 찾아 가니 캠핑장이 의외로  너무 멀리 있고 해서 다른 숙소를 찾으러 나섰다.부딫치면 길이 열린다. 믿지나 본전.바깥에서 보니 정원도 있고 가격이 비싸게 보이지만 한번 반 가격이나 흥정이나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에릭은 물어도 보지 말라고 했지만  난 시도했다.Alberto  아저씨. 무조건 나보고 들어오라며 방을 보여주고 깨끗하고 서구화된 팬션이었다.가격이 120-150Peso다너무 비싸서 우린 못 있어요. 방 보여 주셔서 고마워요. 저희들이 예산한 것은 50Peso 수준인데. 어디 이곳에 일고 계시는 깨끗한 숙소 있으면 알려 주세요 했더니,자전거로 여행 하느라 고생한 것 같은데  50Peso 에 지내면서 편안히 정리하고 고래도 많이 보고 푹 쉬라는 것이었다.Alberto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셨고 그리고  가격도 우리가 예상한 가격에 주시고 그런데 아쉬웠던 것이 아저씨가 너무 바빠 4일 있는 동안 함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린 아저씨 집에 자전거를 두고 지구의 가장 남쪽인 우수아이어 Ushuaia 랑 빙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깔라파테의 페리또 모레노”  Pelito Moreno” 을 항공과 버스로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언제 또 아르헨티나까지 올 수 있을런지 모르고 안보고 가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 단위로 Puerto Madryn을 오면 이곳 Alberto 아저씨네 팬션이 정말로 좋다.
호텔이름: Las Bardas ( Alberto Pagnanelli), Morgan 1751, Puerto Madryn-Chubut-Patagonia Argentina, Tel:02965-454394 Fax: 02965-473457
Internet:
www.lasbardas.com.ar http://www.lasbardas.com.ar
E/mail: lasbardas@lasbardas.com.ar mailto:lasbardas@lasbardas.com.ar
가격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틀림. 팬션이 8개 밖에 안되므로 예약 상황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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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의 천국 Puerto Madr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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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고래다. Puerto Madryn

눈 속의 엘 깔라파테
죽을 뻔하다가 살아서 도착한 “엘 깔라파테”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어떻게  공항에서 도시로 가야 하지 생각했건만 에릭이 재빠르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댄다.  버스 비용: 12Peso 우수아이아 처럼 우리를 공항에서 내버려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일단은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엘 깔라파테 .우리가 찾은 숙소는 관광 안내책에 쓰인 것보다 많이 비쌌다. 지구의 남쪽, 그리고 뜻하지 않은 항공료로 예상한 지출이 많이 소비 되어 조금은 저렴한 곳을 찾아 배낭을 짊어 지고 가다보니우수아이아의 헬레나 ( 한국분)이 알려준 아파트 호텔이 보였다.  우수아이아에서 우리에게는 조금 비싸서 아마  그냥 들리게 되면 간다고 했던 곳인데 들어가 이야기하고 나니 정상 가격의 반으로 해 주신다고 하셨다. 둘이 쓰기에는 너무 큰 아파트 호텔이었다.  가족 6인이 쓰면 딱 적당한 곳이었다. 호스텔 주인은 한국분 권혁태 사장님이시며 동생 되시는 권명숙씨가 남편 김 경득, 딸 김은진과 함께 운영하고 계셨다.  권명숙씨는 여행을 좋아하시고 특히 엘 깔라파테를 고향처럼 사람하시는 분이셨다.우리의 바쁘고 짧은 일정 때문에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누고  떠나는 날 아침 권명숙 (Susannar) 자매님이 식구들과 함께 1시간 30분 주변 구경을 시켜주셨다.  딸 은진 이는  4살 때 아르헨티나에 왔는데 아르헨티나 사는 것이 너무 좋고 정서에도 좋다고 했다. 우리에게 유창한 스페인어로 열심히 새를 설명해주려고 하는 너무 구엽고 꿈이 많은 소녀이다.권명숙 자매님은 오빠 권혁태 사장님이 30년 전에 아르헨티나에 이민 온 배경으로 현재 아르헨티나에 7년째 거주하신다.세계적인 빙하가 있는 지역으로  분지 여서 겨울에는 춥지 않고 눈도 적게 오고 여름에는 아주 바람이 심하지만 아주 매력 있는 곳이라며 깔라파테 애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민을 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스페인어망 구사할 줄 알면  이민 국으로는 권하고 싶으시다며 인구 적고 천연 자원 많은 아르헨티나가 살기 좋으시다며 미국으로 구지 이민을 갈 필요가 있겠냐는 주장이셨다.엘 깔라파테가 아름다운 곳인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나무가 많지 않아 그 당시 남편 김경득씨와 욕심 부리지 않고 나무를 한번 재배 해 보고 실험 해 보시겠다는 계획이셨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2월에 완공 될 호텔 유토피아 설립으로 무지 바쁘셨다. 한편 책에도 기재 되어 있지 않은 칼라파테의 전설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엘 깔라파테는 야생 초에 달린 진 보라색 열매인데 한 원주민이 이 열매로 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섬을 방문 했을 때 이 쨈을 먹으면 다시 칼라파테를 방문한다는 전설이 전해 져서 쨈과 아이스크림으로 이곳은 유명하다. 칼라파테의 쨈과 아이스는 약간 신듯한 맛이 나는데 요즈음에는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하여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소망하시는 나무 심기, 호텔 영업이 잘 되시길 빌며.
SUANAR@HANMAIL.NET. DAUMBLOG.CALAFTE
www.lindavistahotel.com.ar http://www.lindavistahotel.co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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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 남단 도시 우수아이어 Ushaia

자연의 위대함/ 세계적인 빙하 Glaciar Perito Moreno
내가 이렇게 작다니.... 내가 생존한다는 자체의 기쁨 외엔 없었다.세계적인 빙하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환희,느껴보지 않으면 그 자연의 신비를 모를 정도의 아름다움과 표현 자체가 힘든 곳이다. 아마 평생 동안 빙하의 색과 내가 빙하에서 받은 에너지는 잊지 못할 것이다.비용이 들어도 꼭 방문 해 보길 권하고 싶은 곳이다.
참고 : 투어 1: 엘 깔라파테에서 빙하 모레노로 가는 투어는 어느 투어를 이용하던지 동일 가격 60Peso. 아침 9시에 떠나서 저녁 5시경에 돌아옴. 일반 대중 버스는 40Peso. 버스 터미널에서 하루 전에 표를 예약하면 됨. 빙하 모레노에 도착하면 1시간 빙하 주변을 돌아보는 투어가 있는데 별 필요성 못 느낌. 25Peso. 공원 입장료 30Peso
투어와의 차이점은 가이드가 없다는 것 외엔 모든 것이 동일함.
2. 투어 2: Upsala (업살라) / 배를 이용하여 빙하 주변을 보는 것으로 비용 ca.  200Peso , 여름에 보는 것이 좋다고 함. 겨울에는 안개가 끼고 배에서 거의 볼 수가 없음. 가격은 어느 곳에 문의하나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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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Perito Moreno Gletscher

눈 속에서 죽으면 어떻게 하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라몬을 비롯해 경찰들은  우리더러 버스를 이용하여 다시 에스켈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거부작용이 생겼다. 우리 왕 고집은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눈이 왔지만 알레세스 자연공원이 자전거 타기에는 너무 아름답다고 말을 들어서 호기심도 있었고 한편 왔던 길을 버스로 이용해 돌아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온길 만큼 험하지는 않겠지.그리고 12km 가면 호스텔이 있다고 하니 그곳에서 자면 된다. 그런데 으악!  길은 비포장에다 경사였다.  희망은12km 가면 있다는 방가로가 있고 휴식을 취해야지 하는 거뜬한 마음으로 달렸다. 그리고 공원에는 자동차도 없고 천천히 공원의 자연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었다. 희망을 안고 간 방가로에 도착하니  아주 커다란 개가 달려와  날 겁주었다. 내가 무서워하니 주인아저씨는 날 잡고 인간이 무섭지 왜 개가 무섭냐며 설교했다. 느낌을 보니 대낮부터 술을 얼큰하게 마셔 술 주정을 하는 것 같았다. 기분도 나쁘고 가격 또한 비싸고 그리고 그곳에서 한 15km 가면 다른 호스텔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힘들지만 강행군을 하기로 했다.그런데 아침에 약간 내리던 빗발이 막 쏟아 지지 시작하더니 눈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도로에 눈이 갑자기 많이 내리더니  쌓이기 시작하고 미끄러웠다.온몸은 긴장 상태에 빠졌다. 집중을 하고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우당탕.. 자전거와 함께 난 넋 다운이 되었다.  눈에 숨은 돌에 트레일러 뒤 부분이 걸려 급 브레이크를 잡아 자전거가 넘어진 것이다. 다행이 도 다치거나 까지지는 않았다. 조심 스럽게 일어나서 자전거를 세우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안되었다. 에릭은 이미 앞으로 무전기를 쳐도 응답이 없고 한 30분은 씨름을 했다. 춥고 비도 오고 날씨는 더 나빠지기 시작하고 에릭은 반응이 없고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혼자 끙끙 대다가 힘들고 슬퍼서 엉엉 울고 있으니 에릭이 드디어 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아 혹시 넘어지지 않았나 싶었건만 역시나 였다면서 내가 울고 있는 모습이 구엽댄다. 그렇게 힘든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니 미끄러운 길을 달리는 것이 더 겁났다. 오르막은 그럭저럭 힘으로 자전거를 끌어 올리지만 내리막을 도저히 다리가 떨리고 힘이 빠졌다.그런데  참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우리가 죄도 짓지 않았는데 비가 눈으로 변해서 앞도 안보이고 완전히 죽기 아니면 살기 지경이 되어 버렸다.내가 힘이 빠져 혼자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니 에릭은 빨리 앞으로 가서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곳에 두고 와 내 자전거를 끌어 주고 이중으로 힘이 더 들 수 밖에 없었다. 난 정말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리치는 눈 때문에 앞도 안보이고 우리 둘 다 기진 맥진 해서 어두워지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 생각 밖에는 없었다. 더 어둡기 전에 텐트를 길에다가 쳐야지 하고 결정을 내린 순간 앞에서 희미한 불빛에 보였다. 공원 눈 제거차 였다.  한 5km 가면 호스텔이 있을 꺼라고 했다.  힘을 내어 막바지 5km 우리가 도착한 곳이 금후에 Gum Hue 호스텔이었다. 엘리다 아줌마가 재빨리 화롯가에 우리를 앉혀 주셨고 젖은 몸을 말릴 수 있었다 .따뜻하게 샤워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나오는 것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자전거가 넘어져 일어나지 못할 고비를 두 번 넘기고 온통 다리에는 멍 투성이였다. 엉엉!한 없이 울었던 기억왼엔 없다.
다음날은 공원에 눈이 덮여 차량이 통제 되었다고 했다. 방법은 하루를 더 있는 방법 밖엔 없었다.난 며칠이고 그냥 그곳에서 쉬고 싶었지만 밤 9시 되면 전기가 끊기고 촛불을 키고 지내야 했다. 참 이상한 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꼭 감금된 느낌이 들어 벗어나고 싶다. 이것이 방랑자의 병이다.3일째 되던 날 공원관리인이 오더니 우리가 가려는 방향은  눈 제거를 거의 끝냈으니 자전거로 여행해도 별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정보를 주었다. 엘리다 아줌마는 하루 더 있지 하셨고 나도 더 있고 싶었지만 정들면 헤어지기 힘들기에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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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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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끝에 낙이 있다. 알레세스 공원의 아름다운 전경

2005년 8월16일 안데스 산맥 통과 1308m  하여 칠레를 향하여
며칠 내내 눈이 내려 길도 통제되고 눈이 그치고 나니 비가 내렸다. 빌라 앙고스라는 칠레로 가기 전의 마지만 큰 국경 도시이다. 주변에는 7개의 아름다운 호수들이 있고 겨울 관광지로 바리로체 처럼 유명한 곳이다. 99년의 자전거 여행 때도 느꼈지만 한나라에 질린다 싶으면 마지막에 기분 나쁜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상해 그 나라를 떠날 때 미련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인지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이 와서 움직이지 못하고 자전거 보관이 특히 중요한데 숙소의 주인은 까다롭기만 했다.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 자전거를 눈이 많이 맞지 않는 곳에 두긴 했지만 불친절해서 있는 동안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관광객이 많아서 모든 것이 다른 곳 보다 비쌌고 서비스는 엉망이었다. 정 부치지 말고 과감하게 떠나라는 소리인 모양이다.인터넷의 일기 예보를 보니 이틀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칠레 쪽은 계속 비가 온다고 하는데 설사 칠레에 비가 와도 칠레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국경을 넘을 차비를 하고 칠레를 향해 달렸다. 눈이 소복이 온 산의 경관과 호수는 멋있는 장관이었다.. 해는 나지만  바깥기온이 매우 찼고  꼭 몸에서 서리가 나오는 듯했다. 난코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1308m의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꼬불꼬불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 산의 정상. 하지만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경관, 맑은 날씨, 그리고 내 일생에 처음으로 안데스 산맥을 넘는다는 기쁨으로 영차!! 영차!! 하고 달렸다.지나가는 트럭 운전사들은 최고라는 손짓의 격려표시를 해주었고 버스 여행객들은  내려서까지 격려해 주었다. 간혹 보이는 소들은
  “ 아니!!! 이  힘든 지역에 웬 자전거?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소가 움직이질 않았다. 아마 내 자전거가 빨간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신기해서 인지 뿔이 달린 소가 갑자기 달려 들 수도 있다고 들었기에 옆으로 지나갈 때는 온몸에 소름이 바싹바싹 돌았다. 오르막, 소와 씨름하다보니 기진 맥진이었다.에릭은 자전거를 끌지 않고 정상까지 타고 올라간 모양인데 난 도저히 타고 올라 갈수가 없어 끌다가 타다가 그러다 보니 어느덧 눈이 소복하게 쌓인 안데스 산의 정상에 올랐다. 야호!!!!! 해냈구나….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구지 죽음을 무릎 쓰며 산을 등반하는 이유를..하지만 내가 직접 힘들게 자전거로 달려보니 왜? 임을 조금은 알 수가 있을 것만 같다.에베레스트 산과는 정말로 비교가 안 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첫 에베레스산이나 마찬가지이다.
Arg_052

국경도시를 향하자

천사의 보호, 아르헨티나와 작별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힘들게 올라온 오르막의 대가를 받아야지 했는데
도로에는 눈이 소복이 깔려 있었고 눈이 녹은 곳은 얼음이 형성 되어 미끄러웠다
그래도 내리막의 기쁨을 느껴 보기 위해 칠레의 국경을 향해 달렸다.
아차차! 으악! 얼음에 미끄러져 자전거가 내동댕이 쳐져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횐희를 맛보는 것도 좋지만 잘못하면 병원응급실에도 가기 힘들 지경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왔다.
안데스산맥 정상에서 칠레 쪽의 도로 눈 작업을 하는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마침 그 차량이 내려 오는 것이었다. 에릭은 아마 힘들더라도 천천히 위험을 무릎 쓰면서 내려가고 싶은 눈치 인 것 같았지만 난 그 차량을 세워 위험한 지역까지만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칠레 인은 오히려 본인이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이 매우 위험하다고 했는데 왜  그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며 잘한 결정이라면서 자전거를 픽업에 싣고 칠레 국경까지 내려 왔다. 그 길을 아마 자전거로 내려 오려고 했더라면 몇 번이고 넘어지고 밤새 내려와도 못 내려왔을 지역이었다. 아르헨티나 쪽은 배설작업을 했건만 칠레 쪽에서 도로의 눈을 하나도 제거하지 않아 모든 차량이 겨울체인을 하고도 힘들게 오르고 내렸다.힘들게 오르막을 올랐건만 내리막의 환희를 맛보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우리를 지켜준 천사에게 감사하며 아르헨티나와 작별했다.
Arg_056

안데스 산을 넘어 칠레로

1부 끝



아르헨티나 2부  2005년 11월8일부터 2005년 11월28일까지
산에서 사막으로

3189미터의 안데스 산, 사랑의 힘으로 뛰어 넘다! (1)
로스 안데스Los Andes-리오 블랑코Rio Blanco (1.600m)- 포르틸로Portillo (2,855m) -크리스토 렌덴토어Cristo Redentor (3,189m/아르헨티나)

안데스 산맥을 오르고 내린 4일간의 여정.  감동과 환희, 기쁨과 두려움,그4일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눈물이 흐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높고 험하다는 안데스 산을 올랐다는 나의 잠재력에 놀랐고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경관이 날 놀라게 했다. 대자연은 말한다
. “한 사람의 존재는 자연에 비하여 얼마나 작은가? 하지만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안데스 산! 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고산이 내게 다가온다.로스안데스 Los Andes에서 리오블랑코Rio Blanco까지는해발1600미터의 높이라고 한다. 과연 하루에 그 높은 곳을 오를 수 있을까? 기대만큼 걱정이 앞선다. 천천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몸에는 힘이 서서히 빠져 나가고 경사가 지면서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은 안데스 산의 대단한 자연경관과 선인장이었다. 그렇게 높고 험한 산에 선인장이 웅장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선인장의 생명력  대단했다.  리오 콜로라도Rio Colorado까지는 순항했지만 살토 델 솔다도Salto del Soltado  구간은 만만치 않다. 평소와 달리 에릭은 언제 앞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에릭을 쫓아 달려가니 아니! 두 명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가? 여행 중 처음 만나는 자전거 여행가라 너무 반가웠다. 두사람은 살바도르에서 시작하여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로 가고 있다고 한다. 서로 이런저런 정보를 교환하고 두 사람은 매일 꼭 1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기에 아쉽게 작별을 하고야 말았다. 두 사람 중 여쉬아는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한 경험이 있으며 자전거로 나의 고향인 강릉에도 다녀왔다고 하니 이것도 보통 인연은 아닌 셈이다. 첫날인11월7일에는 큰 무리 없이 해발 1600미터 지점까지 달려 올라왔다. 막판에 너무 힘들어서 진행 속도가 느려지기는 했지만 마침 리오블랑코에 숙소가 있어 피로를 풀 수 있었다.드디어 스물 아홉고비 커브에 도착했다. 나는 첫 번 째 커브에서 넉 다운이 되었다. 너무나 가파른 오르막이라 도저히 페달을 돌릴 수가 없었고 그래서 끌고 가야만 했다. 70킬로그램이나 되는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어찌나 힘든 지 발목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다. 오로지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말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그래도 열 아홉 번 째 커브까지 힘을 내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는 차량들에 탄 사람들이 내 트레일러 뒤에 있는 강릉 시 깃발에 그려진 태극기를 알아보고 “코레아 파이팅을 외쳐 대고 또 어떤 사람은 차에서 음료수를 꺼내서 마시라고 주는 등   보이지 않는 관중들의 격려와 관심이었다. 수시로 바뀌는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에도 힘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열 아홉 번째 고개에서 스무 번째 고개는 갑자기 커브길이 반듯해지면서 오르막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눈이 아프고 귀가 멍멍하고 길이 두 갈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니 알레르기 증상인지 무엇에 물린 것인지 눈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었다.아마도 산소가 부족하고 허기가 졌기 때문일 것이다. 비상 약을 꺼내 눈에 넣고 진정제를 먹었지만 증상은 여전했다. 나는 도저히 남아있는 열 개의 커브 길은 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정말로 감사하고 만족하고 싶었다. 트럭이나 경찰차가 오면 도움을 요청하여 그걸 타고 정상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에릭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빨리 앞으로 달려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나에게로 와서 자전거를 끌어주고는 했다. 싫다고, 난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해도 그는 막무가내였다.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들만의 힘으로 정상에 오르고 싶었던 에릭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 순간은 고집 불통인 에릭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눈은 퉁퉁 붓고 가렵고 어깨와 팔 다리에서는 힘이 다 빠져 지치고 눈물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흔하게 지나다니던 빈 트럭이 갑자기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엉엉 울면서 에릭과 함께 자전거를 끌면서 한 고비, 두 고비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어느덧 스물 아홉 개의 커브를 다 올랐고 이제 정상에 도착하는 줄 알았건만 그 다음에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포르틸로라는 곳에서 숙박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동절기라서 정상에 위치한 숙소가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르틸로는 겨울철 스키장으로 유명하고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호텔에 도착해서 내 얼굴을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이 아닌 것(?) 같았지만 부푼 눈이 많이 가라앉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에릭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에릭, 고마워요. 두 배로 힘들었을 텐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도와주어서 말이에요
“
오히려 내가 고맙고 당신이 자랑스러운걸. 울면서도 정상에 오르겠다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차라도 한대 와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는데… 아마도 우리 부부의 사랑의 힘으로 오르라고 한대의 차도 오지 않았던 모양이야”그렇다. 우리부부는 사랑의 힘으로 함께 안데스 산맥을 올랐다. 눈은 퉁퉁 부어올랐고 발목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 피눈물 나는 고생이었지만 나는 나 스스로 그렇게 높은 안데스 산에 올랐고 위대하고 웅장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은 바로 에릭의 생일이었고 그래서 우리 부부에겐 더욱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Arg_058

아르헨티나로 다시돌아오다


3189미터의 안데스 산, 사랑의 힘으로 뛰어 넘다!(2)
크리스토 렌덴토어Cristo Redentor (3,189미터/아르헨티나 ) - 푸엔타 델 잉카Puente del Inca - 업살라타Uspallata -포트렐리오스Potrerillios -멘도사Mendoza

정상 3189미터에 위치한 크리스토 렌덴토어까지 가는 길은 이미 지난 이틀 동안 체력적으로 단련이 되어 있어 힘들지는 않았다. 정상에 도착하니 5킬로미터에 이르는 터널이 있는데 이 구간은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르헨티나까지 실어준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 올 때는 그런 서비스가 없으며 버스나 트럭 운전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미 정상에 올랐으니 다음에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스릴과 짜릿함을 맛보면서 내리막을 타고 내려올 수 있지만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불어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바람에 쓸려 비상도로 밖으로 떨어져 나갈 수 있기에 역시 브레이크를 철저히 점검하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안데스 산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한번은 멋모르고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야호를 연신 소리치며 내려오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휘청휘청하면서 벼랑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바람의 신이여 바람을 조금만 잠재워 주소서그렇게 온몸으로 기도를 하니 바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데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자연의 신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자연의 신들은 대단하다. 내가 조금 이라도 오만한 행동을 하거나 자제를 하지 않으면 나를 금방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자연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면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곳. 푸엔테 델 잉카Puente del Inca라는 곳은 예전에 온천 욕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선물용품을 파는 가게만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콩카구아Aconcagua 산을 등반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또한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MTB애호가들이 1박 2일의 일정으로 와서 쉬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도 4명의 자전거족 들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정보를 교환했다.
Arg_062

잉카의 다리, 온천의 흔적

푸엔테 델 잉카에서부터 업스팔라타까지는 70킬로미터의 거리다. 대부분 내리막이지만 바람이 아주 거칠고 오르막도 있어 아주 목이 탄다. 우리는 둘이서 하루에 약 10리터의 물을 마셨다. 내리막의 자연경관은 정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꼭 영화 속의 한 장면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그렇게 아름다움을 피부로 느끼면서, 또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려온 곳은 업스팔라타. 이곳은 조그마한 마을로 푸엔테 델 잉카를 방문할 사람과 아콩카구아 산을 등반할 관광객이 하루 머무는 곳으로 휴식할 수 있는 숙소가 많다. 업스팔라타에서 포트렐리오스구간은 터널이 많은데 터널 안에 등이 없어 위험하다. 언제 트럭이나 다른 차량들이 질주할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먹을 것이나 물을 살 곳이 전혀 없으므로 반드시 업스팔라타에서 준비해야 한다. 이 구간은 래프팅Rafting을 즐기는 관광객이 많다. 우리는 포트렐리오스에서 캠핑을 하면서 안데스산맥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예찬했다. 캠핑장에서 만난 독일 부부. 에쿠아도르에 살고 있는데 남미가 그렇게 좋단다.  나는 볼리비아와 페루, 에쿠아도르에 대해 조금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분들을 만나 너무나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렐리오스에서 멘도사 구간은 안데스 산맥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감상하며 달릴 수 있는 구간인데 왠지 힘들게 올라간 안데스 산과 작별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포트렐리오스에서 약 20킬로미터의 구간은 덥고 그늘이 없는데다가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라 힘들지만 다음부터 멘도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멘도사는 깨끗하고 나무도 많고 공원도 있어 아름다운 도시다. 하지만 안데스산이 자꾸만 날 부르는 것 같다. 다시 오라고 말이다. 언젠가는 다시 올 수 있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송아지와 어미 소의 눈물
마라에스에서 추쿠마로 가는 사막 길은 맞바람이 불어 너무 힘들었다. 사막의 고요와 평화를 언제 기뻐했었던가?  참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사막의 여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면서 행복해 했었건만 지금은 너무 힘들다.힘들게 바람과 싸우면서 “언제쯤 쉴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날까기대하며 달리고 있는데 아까 자동차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나보다 뒤쳐졌던 에릭이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에릭의 자전거 타이어에는 사막의 모래가시가 더덕더덕 붙어있고 웬 아저씨의 픽업에 자전거를 싣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 자전거 타이어에도 모래가시가 많이 붙어있었는데 아마 조금만 더 달렸다면 타이어 펑크가 여러 군데 날 뻔 했다. 아마 잠깐 자전거를 세워두고 쉬었던 곳에 모래가시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알게 된 호세아저씨가 본인이 일하는 농장에 가서 숯불갈비도 해먹고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면 떠나라고 하신다. 농장은 도로에서 많이 떨어진 모랫길로 들어가서 아주 깊숙이 위치했다. 사막의 곳곳에 농장이 있다고 하는데 참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신기했다. 전기도 없고 물은 탱크로 받아서 사용한다. 농장에는 다른 마을에서 소를 끌고 온 카우초 아저씨들이 쉬고 있었다. 물과 먹이가 귀한 사막이라 소를 끌고 다니면서 농장과 농장을 이동한다고 한다. 카우초쵸들은 우리와 말도 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만 쑥떡 거린다. 사실 나의 자전거 복장이 무척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조금 적나라하게 보일 테고 자전거 바지가 무릎을 덮기는 있었지만 몸에 꼭 맞는 바지가 카우초쵸들에게 분명 이상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시골 카우초쵸들은 외부인을 약간 경계하는 면이 있고 특히 외국인들을 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호세아저씨가 우리들을 소개해주어 카우초쵸들과 악수를 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웬 긴장? 나는 카우초쵸들이 말하는 사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내게 묻는 것은 대충 어림짐작으로 파악하고 그냥
“ja”라고 대답했다. 카우초쵸 아저씨들 중에 올해 74세라는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가장 말을 많이 걸어 오셨고 또 그만큼 인상 깊었다.  다른 사람들은 남편인 에릭이  곁에 있어 무척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카우초들과의 대화는 별 재미가 없었지만 태어 난지 하루밖에 안된 어린 송아지를 만날 수 있는 값진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어제 태어난 송아지를 어미 소와 떼어놓고 가야 한단다. 어미 소는 아프고 곧 죽을 가능성이 많아 데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이 되니 카우초쵸들은 해가 져서 다음 마을로 이동한다고 한다. 하루밖에 안된 아기 소는 어미 소와 떨어지기 싫어 안간힘을 다 쓰고, 그런 상태에서 카우초쵸 네 명이 송아지를 간신히 차에 실었다. 송아지가 너무 가여웠다. 엄마의 품에서 하루밖에 못 있고 떨어져야 하는 심정이 오죽하랴… 엄마와 떨어져 눈물을 흘리는 송아지의 마음이 하늘에 전해진 걸까? 저녁이 되니 바람은 더욱 심해지고 저 멀리 서는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날 밤에는 이 지역에서 3년 만에 처음으로 비가 왔다고 한다. ‘우리가 비를 가지고 왔다’고 호세 아저씨는 사막에 비를 가져온 부부라고 칭찬을 하는데 글쎄 내 생각에는 송아지와 어미소의 슬픔이 빗방울로 변한 게 아닐까 싶다. 
모두 8일간의 사막 라이딩. 힘들긴 했지만 사막의 고요와 평화를 느꼈고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의 잠재력, 즉
“실전에 강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역시 의외의 수확이었다.
Arg_064

3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사막

Arg_067

엄청난 더위다

Arg_066

카우쵸 아저씨들


3부를 기대하세요.



아르헨티나 3부: 2005년11월29일 부터 2006년 3월14일까지
카우초쇼-지옥으로-결론은 행복하다

열띠고 흥겨운 카우초 쇼, 그러나
경기장에 흰 선을 두 줄 그어 놓고 곳곳에 커다랗고 둥근 쇠 깡통을 세워두었다. 처음에 말을 탄 카우초들은 이 쇠 깡통을 건드리지 않고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한다. 말들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이고 깡통의 간격은 좁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하면 건드려서 넘어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카우초의 첫 경기에 속하는
‘몸 풀기’.
몸 풀기 도중에 화려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카우초들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말을 조련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조련되지 않은 말을 올라타는 것이 관전 포인트. 길들여 지지 않은 말은 무척  사납다. 카우초들이 나무 기둥에서 말을 잡고 주인공 카우초가 타기쉽도록 준비하면 말을올라탄다. 그런데 카우초가 말위에 올라타기가 무척 힘들다. 많은 참가자들이 말에 타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 만큼 말 타기가 어렵다는 얘기. 말 위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이 쇼의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보면 카우초는 칠레의 로데오경기와 아주 흡사하다. 어떤 말들은 구속되기 싫어서 묶인 부분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 반항을 하지만 이 모습은 애처롭고 가여워서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다. 결국 이 말은 자유를 찾아 석방(?)되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이치일 것이다.말에 올라타서 경기장 한 바퀴를 모두 돌면서 능숙하게 말을 조련하는 사람이 올해의 최고 카우초로 선정된다. 경기는 음악에 맞추어서 연기하는 예술동작처럼 보인다.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조련하는 카우초,  성난 말에서 떨어지는 예상하기 힘든 장명들이 펼쳐지는데 카우초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성이 터져 나온다. 경기장에서는 이렇게 오후 내내 멋진 경기가 펼쳐진다. 올해 최고의 카우초를 선정하는 대회뿐만 아니라 경기장 주변과 마을이 온통 축제 분위기 인 것이 쇼의 특징이다. 곳곳에서 아사도를 요리하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즐긴다. 저녁에는 유명한 밴드를 초대해서 음악을 즐기고 거리 곳곳에서는 가판대가 늘어선다. 시가행진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원로(?) 카우초들이 말에 멋진 장식을 하고 시가행진을 펼친다. 할아버지 카우초에서 어린 사내아이들이 카우초를 꿈꾸며 말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각종 장식과 의상들이 독특하고도 멋있다. 마을의 카우초 미인은 각종 장식을 한 수레 위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한다.
내가 태어난 강릉의 단오제만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본 카우초쇼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피를 뚝뚝 흘리던 불쌍한 말의 모습이 며칠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떠올랐다.  인간의 욕심과 흥미를 채우기 위해 피를 흘리며 힘들어서 거품을 뿜어내는 말을 채찍으로 때리고 또 때리고…  그리고 보면 사람은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가?
우린 힘들게 이곳의 카우초 쇼를 방문했다. 자전거를 라 리오하에 두고 1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지만 아무래도 국제적인 규모는 아닌 것 같았다. 캐나다와 친선교류를 맺어 캐나다에서 온 카우보이들이 한 20명 참가했을 뿐 우리가 유일한 외국 관광객이었다. 아르헨티나에는 여러 곳에서 카우초 쇼가 개최된다고 하는데 이곳 마다리아가는 유명한 카우초들을 많이 배출하여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Arg_013

카우초의 행진

Arg_015

카우초쇼 


지혜로운 사람은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아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부자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강한 자는 힘이 센 자는 아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두 달 동안 자기 자신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평균 섭씨 40도의 더위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말로만 들었던 무기력증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사고 난지 딱 두 달째 되는 날 노트북에 앉아 정리가 가능했다. 여행자들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은 사고 없이 여행이 끝나기를 누구나 바라는 바이다. 지난 여행 때도 아무런 접촉사고 없이 끝났었고 이번 여행 또한 사고란 것은 상상하지 않았었다. 위험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고가 난다면 나한 테가 아니라 에릭에게 나기 쉬울 것이라고 매번 에릭에게 “천천히 달려라.” “차 옆에 너무 가깝게 가지 마라등등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어느 작가가 그렇게 쓴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다 자기한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이 있다고…

2005년12월 17일 이 날은 나의 착각이 완전히 무너진 날이었다. 그날은 왠지 아침에 눈을 뜨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침대 옆에 놓은 안경을 그만 발로 밟아 안경이 깨져 버렸다. 나는 ‘아마도 오늘 액땜을 미리 하는 구나…’라고 혼자 생각 하곤 짐을 꾸려 임 사장님 가게로 가는 도중 또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예감이 좋지는 않았지만 보름 넘게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하루라도 빨리 자전거 안장에 앉고 싶었고 라 리오하의 더위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컸기에 언니와 형부가 고기도 구워먹고 하루 더 쉬라는 권유를 사양하고 길을 떠났다.

위기일발! 트럭에 받히는 교통사고 발생!
갑자기 트레일러가 흔들거리면서 나는 도로 옆으로 나뒹굴었다. 뭐가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알 수가 없었고 내가 어떻게 자전거 바퀴에서 발을 꺼냈는지도 모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전거는 찌부러져 있고 더워서 제대로 쓰지 않은 헬멧은 도로 가장자리로 날아가 있고 물통과 기름통은 도로에 떨어져 있었다. 왜 사고가 났을까? 트럭이 뒤에서 다가오는 것을 거울로 보았었고 트럭과 나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는데 부딪혔으니 말이다. 일어나서 보니 트럭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흔들었던 것 같고 다행히 트럭 운전사는 우리 앞에 트럭을 세우고 사고 현장으로 다가왔다. 트럭에 타고 있던 세 남자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날 차에 태우고는 “빨리 병원에  가야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오른쪽 발목은 부러졌는지 퉁퉁 부어 올랐고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어떻게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앞에서 에릭이 기다리고 있다고 어렵게 의사 전달을 하여 에릭과 함께 춤비차의 병원으로 갔다.병원에 도착하니 외국인이 와서 그런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의사는 모여드는 간호원과 사람들을 보내곤 나에게 진정제를 놓아주고 발목을 짚어보더니만 부러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단다. 그런데 춤비차에는 엑스레이 시설이 없단다. 나는 생전 처음 구급차를 타고 1시간 넘게 카타마르카로 이동하고 병원에 도착했다. 이동 중에 나는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의사가 엑스레이 결과를 보더니만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며 한 20일쯤 쉬면 다리가 정상적으로 회복된다고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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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사고

카타마르카 병원에서 춤비차로 되돌아오니 저녁 11시가 넘었던 것 같다. 에릭은 트럭운전사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사고 현장 및 기록을 하고 나는 병원에서 배정해준 병실에서 사고로 놀란 마음을 안정시켰다.어떻게 그곳에서 사고가 났을까? 차량이라고는 거의 1시간대에 1대꼴로 보았는데… 또 사고가 나기 전, 백미러로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빨리 달리는 트럭이었더라면 내가 피했을 텐데 트럭은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또 이상한 것 은 사고가 난 차량에 이어서 바로 다른 차량이 다가와 넘어진 나를 구해준 것이다.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천사가 나를 보호해준 것 같았다. 개미새끼 하나 안보였던 몇 시간의 라이딩이었는데 일반 차량이 아닌 트럭과 부딪혔어도 별다른 외상도 없고 뼈도 부러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가호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꼬리를 물었다. 앞으로 20일 동안이나 어디에서 어떻게 요양을 할 것인가?  자전거가 얼마나 손상이 되었을까? 고칠 수는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라 리오하가 춤비차보다는 큰 도시이고 여러 가지 행정처리하기 수월하고 또 짧게나마 정이 든 임생 언니 네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라 리오하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고 다음날인 12월 18일 사고를 낸 운전사가 다른 트럭운전사를 보내 우리는 라 리오하의 언니네 별장으로 돌아왔다.  3주 동안만 지내면 발목이 완쾌될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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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생언니네 가족들과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

이구아수의 정기를 온 몸에 받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구아수까지는 항공편으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이구아수공항에 대한 느낌은 참 좋았다. 규모는 작지만 야자수가 많이 우거져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이구아수폭포는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구아수공항이 제주공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부에노스에서도 이구아수까지 항공편을 이용한 패키지 상품(1인 당 1,000페소 내외)도 있는데 이 관광 상품에는 호텔 픽업부터 폭포 투어까지 포함 되어 있다. 이구아수 국립공원에 도착하면 입장료 30페소를 내고 자유로이 폭포를 구경할 수 있다. 다음날 또 방문을 하려면 첫날 입장권에 도장을 받아 두자. 다음날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국립공원에서도 사파리 투어, 보트투어를 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구아수 폭포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웅장함은 사진이나 TV로 보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 웅장함, 위대함, 환희, 엄청난 물의 힘… 한 마디로 입이 다물어지질. 특히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커다란 악마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은 소리와 형상이다. 나도 모르게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이 이는가하면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라가는 것 같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눈으로 보아야 실감이 난다. 우리는 이구아수 폭포에 반해서 다음날도 폭포를 찾았다. 한동안 안데스 산맥을 생각하면 가슴이 콩콩 뛰었었는데 이제는 이구아수 폭포를 생각하면 온몸이 시원해지고 힘이 넘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일주일이라도 폭포 주변에서 머물고 싶을 정도였다. 이구아수폭포는 브라질 쪽에서도 바라 볼 수 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대중버스를 이용하거나 여행사가 권하는 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브라질 쪽에서는 헬리콥터로 폭포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두 군데를 다 다녀온 관광객의 말을 들으면, 전반적인 파노라마를 보려면 브라질, 아기자기하고 상세한 면은 아르헨티나 쪽이 더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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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아수폭포/악마의 목구멍

2개월 10일간의 보험금 청구를 마치다
2006년2월 28일 정오, 드디어 보험회사 측과 협의를 할 수 있는 날이다. 12시 30분까지 중재변호사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12시 30분이 넘어 중재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보험회사 변호사가 사고가 났다면서 15일 후에나 다시 만나는 일정을 잡자고 한단다.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중재일정을 Meditation이라도 하는데 상대방 측과 합의가 되지 않거나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면 그 이후의 단계가 법적소송이라고 한다. 우리는 보험회사와의 합의를 원했지만 그 쪽에서는 우리가 외국인이니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자는 작전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 변호사도 화가 나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고 기다려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법적 소송을 권하였다. 법적 소송은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길게는 10년까지도 간다고 하며 일단 우리가 소송 비의 3퍼센트를 지불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모든 자료는 공증을 받아야 하고 위임 권을 변호사에게 맡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미친개한테 물렸다 치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 터라 에릭은 돈과 시간이 들더라고 소송을 걸겠다고 하여 변호사에게 위임을 하겠다는 서류를 공증 받고 라 리오하로 돌아가기로 했다.라 리오하에서의 공증이 걱정이 되었다. 사고 당시의 자전거 상태를 공증 받아야 하는데 우린 이미 독일에서 부속품을 공급 받아 일부는 수리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증사에게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 하면 공증을 해 주지 않을 것이고 공증사가 작성한 서류가 법적 소송에서는 근거 자료라는 것이 아닌가? 참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공증사 뿐만 아니라 자전거 전문인이 함께 증인이 되어야 한단다. 결국 자전거를 사고 당일의 모습으로 비슷하게 망가뜨릴 수밖에 없다. 참 살다가 별 짓을 다하게 생겼다. 간신히 정상 상태로 만들어 놓은 자전거를 다시 망가뜨려야 하다니. 오랜 시간을 고민했지만 우리는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르기”로 했다. 결국 자전거를 사고 당시와 같이 망가뜨린 것이다. 다음날 공증사가 와서는 망가진 상태를 대충 확인하고 우리가 작성한 서류를 그대로 접수해준다.  그리고 사진도 사고 당일 날의 사진에 자신이 2달이 넘어서 찍은 것처럼 사인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리를 믿고 그렇게 했겠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 하는 말 "모든 일이 대충대충, 부정과 눈가림이다"라는 말이 딱 맞다 싶었다. 공증 서류는 생각보다 쉽게 마쳤고 모든 서류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변호사에게 넘기고 기다리기로 했다. 사고가 나고 또 보험 처리를 하느라 여행경비가 많이 축나긴 했지만 또 그만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아르헨티나의 법 처리 과정도 조금 알게 되었고 사고로 인해 아구아수 폭포도 방문하고 그리고 따뜻한 한국 가족 임생 언니네 식구들도 알게 되고, 공증까지 해가며 법적 소송을 진행시켰으니 말이다. 2개월 10일에 걸친 치료와 보험금 청구…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글쎄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나타날 지 아닐 지는 시간이 흘러 봐야 알겠지만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않는가?

4부를 기대하세요.



아르헨티나  4부: 16.03.2006년 3월16일부터2006년 4월18일까지
다시 전진

3월16일 모든 것을 접어 두고 자전거로 다시 떠났다. 사고로 인해 많이 긴장했고 발목이 완전히 정상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북쪽의 살타와 후후이 구간이 다행이도 다시 여행 시작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 차량도 많지 않았고 자연경관도 아주 좋다.LA Caldera 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하니 치차 축제가 있다고 한다.(치차는 옥수수로 만든 음료로 술맛이 나고 치차를 많이 마시면 헤롱헤롱, 남미에는 여러종류의 치차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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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점심 La Caldera

후후이에서는 호스텔 주인 티토 아저씨가이자전거광이라 아르헨티나 자전거 팀들과 당일 투어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전거를 호스텔에 두고근교의 관광지를 보러다니고 Purmamarca(유네스코에 등록된 아름다운 마을) Las Salinas Grandes(소금 동산 ) und Iruya (그림과 같은 마을)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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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동산에서 여행경비를 좀 벌어야지!

볼리비아로 떠나려고 하는데 3주 내내 후후이에는 비가 내렸다. 호스텔 주인 티토 아저씨와 친해져서 함께 요리고 해 먹고 즐겁게 3주를 보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즉흥적인 파티다. 온 관광객들이 다들 좋은 분위기였고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밤새 춤과 음악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춤을 잘 못 추는 내가 얼마나 신나게 살사와 각종 디스코를 추었는지 아르헨티나의 작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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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rie(여), Carlos(남), Don Tito (호스탈주인아저씨)

8개월간의 아르헨티나 여행, 사고가 있어 심적, 육체적으로 속상하고 아쉬웠지만 사고로 인해 더 많은 좋은 경험을 한 곳이다. 언제 또 오려나!
아쉬움이 남을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추억이고 기억이다

볼리비아로 떠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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