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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1
Cambas 의 땅


만지지는 말고 보기만 하세요!
국경에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볼리비아, 야쿠이바라는 곳에 도착했다.으악!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첫 느낌은 인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잡동사니 쓰레기. 짐꾼, 리어카 꾼, 개, 돼지, 똥, 바글바글 대는 사람들, 장사꾼 등 세상의 번잡한 것들은 한 곳에 모인 것 같다.  자전거를 끌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 들어가니 사람들이 때 거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들었는데 완전히 반대다. 에릭은 볼리비아 관세청으로 가서 여권에 거주 도장을 받고 난 자전거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주위에 원으로 몰려든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태극기를 알아보고 “Eres  Coreana?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아르헨티나에서 일할 때 한국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면서 친구를 만난 듯이 기뻐하며 김치, 오징어볶음 등 한국 음식 이름을 말한다. 그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서 다른 사람들은 이때다 싶은지 자전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Por Pavor, no toca. 제발 만지지 마시고 보기만하세요.”를 외쳐댔지만 듣는 둥 마는 둥. 이네들에게는 우리 자전거가 마냥 신기한 한 모양이다. 보기만 하라고 해도 자꾸 에릭 자전거를 만지고 한 사람이 만지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몰려들어 만지다 보면 자전거가 넘어지거나 도난의 염려가 있어서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될 것 같아 살펴보니 마침 세관원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Bien Venidos. 환영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여 자전거 장갑을 낀 채 악수를 하고 도와 달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보기만 하지 만지지는 말아달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달라고 하니 바로 옆에서 자전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을 작대기로 가볍게 치면서 몰려든 사람에게 “자전거 만지지마! 안 그러면 다들 이렇게 맞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인도의 우체국에 갔을 때 내가 줄을 안 섰다고 항의를 하니 그때도 우체국 직원이 작대기오 사람들을 막 때렸던 적이 있다. 세관원이 때려도 아무 말하지 않고 씨익 웃으면서 “반갑다, 좋은 여행해라.”고 하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바보 같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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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국경이 눈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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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도로 경찰의 검사. 최초의 신분중 검사


닭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숙소에 기대를 많이 건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곳은 한 10년은 침대를 갈지 않아 침대가 휘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숙박비는 꼭 챙긴다. 침대당 15Bolivianos(2500원 가량) 정도로 무척 싼 편이기는 하지만 방을 보면 방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창고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바닥에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천정에는 거미줄이 널려있다. 화장실에 이르러서는 최악의 정점에 이른다. 오히려 푸세식이면 구역질이 덜 날 텐데.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똥파리 떼가 얼굴로 날아들고 심각한 악취로 구토 일보 직전이 된다.
아직 볼리비아 실정을 모르는 터라 마을광장에서의 캠핑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생각다 못해 떠오른 것은 아르헨티나처럼 학교나 시청으로 가서 캠핑을 하자는 것이었다. 학교를 찾아가 관리자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니 우리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다며 교실에서는 캠핑이 불가능하고 예전에 방으로 썼던 곳이 비어있으니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다 가라고 선처를 해준다. 샤워는 못하지만 받아놓은 빗물로 땀으로 흘린 몸을 닦을 수도 있다고…
찬물 더운물을 가릴 우리가 아니다.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과 씻을 수 있다는 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다행히 인도처럼 사람들이 바깥에서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을 하지 않아서 마음은 조금 놓였지만 간혹 몰래 몰래 우리를 지켜본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마을로 갈수록 숙소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어둡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한다. 한번은 마을에 숙소가 없어 농장에 캠핑을 문의했더니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고 지내다 가라고 주인이 배려를 해주었다. 직접 손수 만든 치즈도 주고 이런 저런 볼리비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농장에서 하는 캠핑이라 잠도 충분히 잘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전 완전히 오산이었다. 새벽 4시에 소떼들이 일어나서 행진을 하더니만 새벽까지 울어대는 닭, 새 들. 그리고 아침 먹는데 함께 먹겠다고 기웃거리는 닭들. 농장에서의 캠핑도 오래 할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경험이기는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숙소를 구하는 것이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은 더 수줍음을 많이 타고 우리가 말을 걸어도 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가 정확한지도 의문이고 다음 마을에서 물을 구입할 수 있는지 등등의 정보를 얻고 싶은데 우리를 쳐다보는 눈은 “외계인이 온다.” 내지는 “저게 뭐야? 자전거도 아니고 이상한 것이 오네?” 같은 식이다.
지나가면서 우리가 인사를 해도 대꾸도 없고 한참 서서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을 자전거 거울로 볼 수 있다. 특히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들의 표정이 가장 특이하다.  이렇게 시골 사람들은 우리들의 방문을 외계인 보듯이 하였고 별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왠지 편안했다. 일단 무관심도 관심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에 대한 무서움이랄까? 심적으로 걱정한 바가 하나 줄어들었고 또 다행인 것은 비상도로가 있어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교차가 너무 심해서 기진맥진해도 차량이 뜸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신나게 앞에서 달리고 있는데 자전거 거울에 에릭이 보이지 않는다. 어! 왜 아직도 안 오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것이었다. 길이 갈라지지도 않았는데… 순간 떠오른 생각이 “펑크가 났구나.”였다. 힘들게 달려온 오르막길을 되돌아 낑낑거리며 가보니 열심히 자전거를 분해해서 펑크를 때우고 있었다. 그날은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씩이나 났다


산타크루즈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삶
나는 인복이 참 많은 것 같다. 산타크루즈에 도착해서 볼리비아 젊은 여성들의 사고와 가치가 궁금하여 어떻게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던 차에 대구교구 소속의, 요한(서준영 신부)한국 신부님을 비롯하여 다른 신부님 두분 요한(박상용) 신부님과 스테파노(김종률) 신부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신부님은 “교육관이 있으니 좀 쉬면서 자전거로 갈수 없는 지역도 보고 가라.”고 배려를 해주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고 신부님들이 농촌 오지를 다니면서 선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교육관에서는 최유경씨(세례명: 리나)도 만났는데  같은 강원도 출신으로 청소년 직업 교육 및 볼리비아 여성개방 운동에 노력을 하고 계시는 분이니 내가 궁금했던 볼리비아 여성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주었으니 나로서는 일석이조, 일석 십조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대학(국립 및 사립)을 졸업하는 여성의 경우, 직업을 갖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10명 중 겨우 2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남편 잘 만나기 위해서 대학을 다닌다”는 대답이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한때 그런 젊은 층이 있지 않았나 싶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일할 만한 자리가 없을 뿐더러 아직까지 볼리비아에서 여성이란 존재는 남자의 소유물에 비교 되니 여성들이 직업에 대한 꿈을 꾸기도 힘들다. 이 말은 곧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 좋은 신랑감을 만 날수 있는가? 그곳은 대학이다. 국립대학은 가난한 대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이고 사립대학은 그래도 가정에 여유가 는 학생들이 이 다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이른바 ‘킹카’를 만나려면 과도한 학비를 무릅쓰고 사립대학을 가려고 한다.
대학 진학이 어려운 못하는 여성들은 직업교육에 관심이 많다. 직업 교육은 대체적으로 외국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육관이나 국립직업교육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분야는 미용과 매니큐어, 페디큐어, 컴퓨터, 양재, 봉재 등이다.
대구 교구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 교육관은 다른 곳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5달러)하다.  하지만 시에서 인정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종교와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관리는 최유경 씨가(본명: 리나)하고 있다. 최유경씨는 에콰도르에서 8년 동안이나 사회사업을 해 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산타크루즈 교육관에 온지는 2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 여성들이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교육관에서 배워 남성으로부터 자립을 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는 것이 참 보람되지요.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어요. 여러 가지 코스를 제공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하루 세끼 먹는데 왜 다른 것을 배워야 하냐는 생각들이니까요.”
하지만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씩 이동하면서 볼리비아 젊은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치려고 노력한 보람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교육과정이 만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던 것은 한국인이 그리고 나랑 종교가 동일한 카톨릭 재단에서 이런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흐뭇했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도 많은 선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느 목사님은 산타크루즈에 대학교까지 창립하셨다고 한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볼리비아는 가톨릭 국가이지만 정조 관념이란 것이 전혀 없을뿐더러 그것이 죄가 된다고 느끼지 못하며 외도를 많이 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금방 이혼을 하고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 길거리에 내버려지는 아이들도 많고 남편으로부터 생계 유지비를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면서 사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고 한다. 이 부류의 여성들은 파출부나 청소부 등으로 일을 하면서 더러는 주인집 남자와 또 바람나는 등의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민층뿐만 아니라 배운 사람들도 성에 대해서는 매우 자유롭다고 한다.  
최근 들어 관광객들의 영향 및 유네스코의 지원 등으로 볼리비아 여성들은 많이 깨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초기 단계, 걸음마 단계지만 언젠가는 남성으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볼리비아 여성들이여, 남자로부터 해방되려면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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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Cruz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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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Cruz
근교의 Mennonite
Par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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