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리비아 1
Gambas 의 땅
만지지는 말고 보기만 하세요!
국경에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볼리비아, 야쿠이바라는 곳에 도착했다. 으악!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첫 느낌은 인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잡동사니 쓰레기. 짐꾼, 리어카 꾼, 개, 돼지, 똥, 바글바글 대는 사람들, 장사꾼 등 세상의 번잡한 것들은 한 곳에 모인 것 같다. 자전거를 끌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 들어가니 사람들이 때 거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들었는데 완전히 반대다. 에릭은 볼리비아 관세청으로 가서 여권에 거주 도장을 받고 난 자전거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주위에 원으로 몰려든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태극기를 알아보고 “Eres Coreana?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아르헨티나에서 일할 때 한국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면서 친구를 만난 듯이 기뻐하며 김치, 오징어볶음 등 한국 음식 이름을 말한다. 그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서 다른 사람들은 이때다 싶은지 자전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Por Pavor, no toca. 제발 만지지 마시고 보기만하세요.”를 외쳐댔지만 듣는 둥 마는 둥. 이네들에게는 우리 자전거가 마냥 신기한 한 모양이다. 보기만 하라고 해도 자꾸 에릭 자전거를 만지고 한 사람이 만지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몰려들어 만지다 보면 자전거가 넘어지거나 도난의 염려가 있어서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될 것 같아 살펴보니 마침 세관원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Bien Venidos. 환영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여 자전거 장갑을 낀 채 악수를 하고 도와 달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보기만 하지 만지지는 말아달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달라고 하니 바로 옆에서 자전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을 작대기로 가볍게 치면서 몰려든 사람에게 “자전거 만지지마! 안 그러면 다들 이렇게 맞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인도의 우체국에 갔을 때 내가 줄을 안 섰다고 항의를 하니 그때도 우체국 직원이 작대기오 사람들을 막 때렸던 적이 있다. 세관원이 때려도 아무 말하지 않고 씨익 웃으면서 “반갑다, 좋은 여행해라.”고 하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바보 같다고 해야 하나.
볼리비아 국경이 눈 앞이다
볼리비아 도로 경찰의 검사. 최초의 신분중 검사
닭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숙소에 기대를 많이 건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곳은 한 10년은 침대를 갈지 않아 침대가 휘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숙박비는 꼭 챙긴다. 침대당 15Bolivianos(2500원 가량) 정도로 무척 싼 편이기는 하지만 방을 보면 방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창고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바닥에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천정에는 거미줄이 널려있다. 화장실에 이르러서는 최악의 정점에 이른다. 오히려 푸세식이면 구역질이 덜 날 텐데.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똥파리 떼가 얼굴로 날아들고 심각한 악취로 구토 일보 직전이 된다.
아직 볼리비아 실정을 모르는 터라 마을광장에서의 캠핑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생각다 못해 떠오른 것은 아르헨티나처럼 학교나 시청으로 가서 캠핑을 하자는 것이었다. 학교를 찾아가 관리자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니 우리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다며 교실에서는 캠핑이 불가능하고 예전에 방으로 썼던 곳이 비어있으니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다 가라고 선처를 해준다. 샤워는 못하지만 받아놓은 빗물로 땀으로 흘린 몸을 닦을 수도 있다고…
찬물 더운물을 가릴 우리가 아니다.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과 씻을 수 있다는 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다행히 인도처럼 사람들이 바깥에서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을 하지 않아서 마음은 조금 놓였지만 간혹 몰래 몰래 우리를 지켜본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마을로 갈수록 숙소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어둡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한다. 한번은 마을에 숙소가 없어 농장에 캠핑을 문의했더니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고 지내다 가라고 주인이 배려를 해주었다. 직접 손수 만든 치즈도 주고 이런 저런 볼리비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농장에서 하는 캠핑이라 잠도 충분히 잘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전 완전히 오산이었다. 새벽 4시에 소떼들이 일어나서 행진을 하더니만 새벽까지 울어대는 닭, 새 들. 그리고 아침 먹는데 함께 먹겠다고 기웃거리는 닭들. 농장에서의 캠핑도 오래 할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경험이기는 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숙소를 구하는 것이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은 더 수줍음을 많이 타고 우리가 말을 걸어도 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가 정확한지도 의문이고 다음 마을에서 물을 구입할 수 있는지 등등의 정보를 얻고 싶은데 우리를 쳐다보는 눈은 “외계인이 온다.” 내지는 “저게 뭐야? 자전거도 아니고 이상한 것이 오네?” 같은 식이다.
지나가면서 우리가 인사를 해도 대꾸도 없고 한참 서서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을 자전거 거울로 볼 수 있다. 특히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들의 표정이 가장 특이하다. 이렇게 시골 사람들은 우리들의 방문을 외계인 보듯이 하였고 별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왠지 편안했다. 일단 무관심도 관심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에 대한 무서움이랄까? 심적으로 걱정한 바가 하나 줄어들었고 또 다행인 것은 비상도로가 있어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교차가 너무 심해서 기진맥진해도 차량이 뜸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달려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신나게 앞에서 달리고 있는데 자전거 거울에 에릭이 보이지 않는다. 어! 왜 아직도 안 오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것이었다. 길이 갈라지지도 않았는데… 순간 떠오른 생각이 “펑크가 났구나.”였다. 힘들게 달려온 오르막길을 되돌아 낑낑거리며 가보니 열심히 자전거를 분해해서 펑크를 때우고 있었다. 그날은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났다
산타크루즈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삶
나는 인복이 참 많은 것 같다. 산타크루즈에 도착해서 볼리비아 젊은 여성들의 사고와 가치가 궁금하여 어떻게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던 차에 대구교구 소속의, 요한(서준영 신부)한국 신부님을 비롯하여 다른 신부님 두분 요한(박상용) 신부님과 스테파노(김종률) 신부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신부님은 “교육관이 있으니 좀 쉬면서 자전거로 갈수 없는 지역도 보고 가라.” 고 배려를 해주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고 신부님들이 농촌 오지를 다니면서 선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교육관에서는 최유경씨(세례명: 리나)도 만났는데 같은 강원도 출신으로 청소년 직업 교육 및 볼리비아 여성개방 운동에 노력을 하고 계시는 분이니 내가 궁금했던 볼리비아 여성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주었으니 나로서는 일석이조, 일석 십조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대학(국립 및 사립)을 졸업하는 여성의 경우, 직업을 갖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10명 중 겨우 2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남편 잘 만나기 위해서 대학을 다닌다”는 대답이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한때 그런 젊은 층이 있지 않았나 싶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일할 만한 자리가 없을뿐더러 아직까지 볼리비아에서 여성이란 존재는 남자의 소유물에 비교 되니 여성들이 직업에 대한 꿈을 꾸기도 힘들다. 이 말은 곧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 좋은 신랑감을 만 날수 있는가? 그곳은 대학이다. 국립대학은 가난한 대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이고 사립대학은 그래도 가정에 여유가 는 학생들이 이 다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이른바 ‘킹카’를 만나려면 과도한 학비를 무릅쓰고 사립대학을 가려고 한다.
대학 진학이 어려운 못하는 여성들은 직업교육에 관심이 많다. 직업 교육은 대체적으로 외국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육관이나 국립직업교육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분야는 미용과 매니큐어, 페디큐어, 컴퓨터, 양재, 봉재 등이다.
대구 교구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 교육관은 다른 곳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5달러)하다. 하지만 시에서 인정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종교와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관리는 최유경 씨가(본명: 리나)하고 있다. 최유경씨는 에콰도르에서 8년 동안이나 사회사업을 해 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산타크루즈 교육관에 온지는 2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 여성들이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자세, 그리고 교육관에서 배워 남성으로부터 자립을 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는 것이 참 보람되지요.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어요. 여러 가지 코스를 제공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하루 세끼 먹는데 왜 다른 것을 배워야 하냐는 생각들이니까요.”
하지만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씩 이동하면서 볼리비아 젊은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치려고 노력한 보람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교육과정이 만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던 것은 한국인이 그리고 나랑 종교가 동일한 카톨릭 재단에서 이런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흐뭇했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도 많은 선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느 목사님은 산타크루즈에 대학교까지 창립하셨다고 한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볼리비아는 가톨릭 국가이지만 정조 관념이란 것이 전혀 없을뿐더러 그것이 죄가 된다고 느끼지 못하며 외도를 많이 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금방 이혼을 하고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 길거리에 내버려지는 아이들도 많고 남편으로부터 생계 유지비를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면서 사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고 한다. 이 부류의 여성들은 파출부나 청소부 등으로 일을 하면서 더러는 주인집 남자와 또 바람나는 등의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민층뿐만 아니라 배운 사람들도 성에 대해서는 매우 자유롭다고 한다.
최근 들어 관광객들의 영향 및 유네스코의 지원 등으로 볼리비아 여성들은 많이 깨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초기 단계, 걸음마 단계지만 언젠가는 남성으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볼리비아 여성들이여, 남자로부터 해방되려면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
Santa Cruz의 대성당
Santa Cruz근교의 Mennonite
볼리비아 2
정글, 먼지를 벗삼아 푸른 하늘을 향하여
Santa Cruz의 대구 교구에 자전거를 두고 자전거로 여행하기 힘든 곳을 버스로 여행하기로 했다. 소금 사막을 가려면 수크레와 포토시를 거쳐가는 길이 편안하다. 백색의 도시 Sucre에 도착하니그 동안 보았던 볼리비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온 도시의 건물을 흰색으로 칠해서 백색의 도시로 이름이 부쳐졌다고 한다. 대성당과 여러 성당들 볼 것도 많고 오랜만에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좋다. 수크레 대 성당은 입장료가 있지만 방문할 만하다.
Sucre 대성당
수크레 근교에는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디오의 장이 열리는Tarabuco인데 일반 대중버스로는 가기가 조금 힘들고 투어를 하면 편안하다. 이곳에 가면 인디오들의 복장과 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이 그 동안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1불씩 손에 쥐어준 모양이다. 사진 찍으려면 무조건 돈을 요구라는 것이 순진한 인디오 얼굴과 다른 모습이라 조금 실망스럽다.
Tarabuco의 시장
수크레는 음악과 예술가들이 많은 도시이다.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하루는 우연히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는 길에 음악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기웃거렸더니 한 집의 정원에서 한 2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춤과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날은 다가오는 여름의 축제를(Virgen de Guadalupe) 위해 하는 준비와 제례였다. 신성한 마리아 상을 중간에 두고 볼리비아인 들이 많이 씹는 코카 잎과 담배,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태우는 제례였다.
축제Virgen de Guadalupe전의 제례
환상! 지구 최대의 소금 사막 ‘우유니’
소금사막 1일째.우유니에서 한 10분쯤 달려 도착한 곳 ‘기차의 묘지’. 예전에 상업용으로 사용되었던 기차들이 녹슨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된 기차들이고 당시만 해도 정밀한 가공기계가 없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기차의 묘지를 떠나 소금 박물관이 있는 곳, 콜차니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도 보고 소금으로 만든 관광상품도 구경했다. 그런데 정작 내 기억에 남은 일은 출생한 지 갓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라마에게 우유를 먹인 일이다. 관광상품을 파는 아줌마가 라마에게 줄 우유를 타는데 내가 궁금해 하니 젖병을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혹시 라마가 내 손을 깨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얼마나 우유를 쪽쪽 잘 빨아 먹던지 꼭 아이가 우유를 빨아먹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라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깊고 투명하면서 검은 듯한 갈색.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박물관을 떠나 한 30분쯤 달렸을까!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소금 사막에 도착했다. 정말 광대하다.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소금사막을 본 터라 그 뭐랄까! 처음 접하는 관광객들과는 느낌이 달랐지만 남한의 9분의 1 크기가 된다는 웅장하고 거대한 소금 사막.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내려서 걸으면 소금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고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하얗게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작정 떠나고 싶은. 자유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진도 재미있게 찍을 수 있고 소금으로 만들어진 호텔을 방문할 수 있는데 지붕과 문을 제외하곤 모든 곳이 소금이다. 식탁, 침대, 의자 등이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졌다. 예전에는하루숙박비가 미화 2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이용하는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막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깨인 관광객들은 이용을 하지 않으려 하고 배낭 여행객들에는 비싸서 요즘 이 호텔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은 일본인들이 대부분이고 한국 사람들도 꽤 된단다.
소금호텔
물고기의 섬
지프차는 소금 호텔에서 점심식사 장소인 ‘물고기의 섬’으로 달려한다. 굳은 눈 위를 질주하는 느낌을 주는 이 길은 주변 경관이 정말 멋있다. 자전거를 타고 와KT왔으면 더 멋있고 자유로울 텐데… 물고기의 섬Isla Pescado. 콜차니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사막 안의 섬’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선인장들이 많다. 태고 적에 바다였음을 말해 주듯 이곳에서는 지금도 해초화석Estromatolitos이 출토된다고 한다. 기둥 같이 거대한 선인장이 무성하게 자라 기묘한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우기에 빗물이 고여 하얀 거울의 바다로 둘러싸이게 되면 진짜 섬으로 변하여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초현실적 경관을 연출한단다. 섬의 정상에는 지그재그 바위 길을 달려 올라가는데 정상에서는 하얀 지평선을 배경으로 섬 전체에 무수히 서있는 선인장이 바위와 함께 어울려 장관이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명상과 기도를 드리면 마음이 펑! 트인 느낌이 든다. 아!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대자연이여.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선인장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환각성 선인장Trichocereus은 12.3미터가 자라는데 모두 120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웅대한 모습으로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는가? 섬 정상까지 왕복 소요 시간은 반시간 남짓. 어느덧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고 소금 사막에서의 야외 피크닉이 시작된다. 특별 투어 지역의 “악마의 동굴Cueva del Diablo”과 “갤럭시 동굴Gruta Galaxis ” 은 인디오 족이 미라를 묻었던 48개의 무덤과 만날 수 있다. 해골과 미라 그리고 함께 부장되었던 물건들도 볼 수 있다. 미라 발굴작업을 하다가 발견된 곳이 갤럭시 동굴인데 신비하고도 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동굴 속 형상들이 마치 은하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다. 이곳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하루 일정이 끝나게 된다. 첫날 묵을 산 페드로San Pedro는 무척 작고도 조용한 마을이다. 온 마을이 깜깜한 가운데 에릭이 나에게 수 없이 이야기 했던 밤하늘을 바라 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을 보긴 처음이다. 인공적인 조명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내 몸에 전해오는 것 같다. 소금 사막이 웅장한 느낌을 준다면 밤하늘의 별보기는 잔잔하고도 평화스러운 느낌이다. 사막에서는 낮과는 달리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더군다나 6월과 7월은 이곳의 겨울인 터라 더더욱 추웠다. 숙소의 이불만 덥고 잔 관광객들은 너무 추워 밤을 새우듯 했지만 우리는 둘 다 따뜻하게 잘 잘 수 있었다. 미리 침낭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용감한 돌’과 ‘돌의 나무’
우유니 사막의 둘째 날. 오늘은 각양각색의 호수와 플라맹고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가 크다. 산 페드로에서 한 30분 달리니 온 사방에 산호초가 펼쳐져 있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용감한 돌Ejercito de Piedra”이다. 1억 년 전에 바다였다는 증거다. 이곳에는 화산 “Ollague” (5830미터)도 볼 수 있는데 가끔 화산까지 등반하는 관광객도 있는데 왕복에 7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다시 200미터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다시 환상적인 모습과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 침식, 풍화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깎인 산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마치 인공적으로 문양과 색을 배합한 것 같은 분위기다.
광활한 사막을 달리다보면 떼를 지어 한가하게 먹이를 찾는 ‘비쿠나Vicunas’를 볼 수 있는데 겁이 많아 사람이 조금 다가가면 금방 도망가 버린다. 볼리비아에서는 소멸하는 비쿠나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쿠나의 털은 따뜻하고도 귀한 것이라 한때는 멸종의 위기까지 갔던 야생라마다.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하는 호수들 Laguna Hedionda, Laguna Chiarcota, Laguna Carapa, Laguna Honda (Laguna는 호수라는 뜻. 뒤에 붙은 것이 이름이다)을 바라보게 되는데 무척 평화로운 광경이다.
호수에서 산 방향으로 조금만 산책을 하면 쉽게 여우를 만나게 된다. 여우는 관광객들이 점심을 먹고 음식찌꺼기를 남겨 놓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관광객들이 모두 내려와서 요기를 한다. 난 운 좋게도 한 마리의 여우랑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사막 한가운데 이상한 돌들이 모여 부락처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돌의 나무 Arbol de Piedra”다. 마냥 신기하다. 이곳이 우유니 투어의 랜드 마크가 된 곳인데 한 아름이나 되는 돌기둥이 거대한 바위를 받치고 있어 ‘돌의 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바위들은 바람과 폭풍 그리고 침식과 퇴적 등 자연현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돌의 나무
자연은 말한다!
마지막 날은 새벽 5시에 출발이다.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간헐천 지대를 보아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간헐천은 유황냄새가 진하고 온천처럼 따뜻하다. 다른 관광객들은 춥다고 벌벌 떨면서 온천물에 손만 담그고 있다. 사우나와 온천을 워낙 좋아하는 나. “온천욕을 하고 나올 때는 무척 춥다”고 말리는 팀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온천에 몸을 담그니 음~ 그 기분은 천하를 다 얻은 듯하다고나 할까? 이틀 동안 쌓였던 먼지와 피로에 싹 가시고 온몸이 스스로 녹는 기분이다. 온천욕을 하면서 해돋이를 보는 것또한 일품이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아침의 해Sol de Mañana’다. 나는 20분 정도 혼자 온천에 앉아 있고 우리 팀들은 벌벌 떨면서 가이드가 준비하는 아침식사를 기다렸다. 가엾은 사람들. 이 물이 얼마나 따뜻한데 그리고 온천을 하고 나오면 자연의 신선한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더 좋은데 그걸 모르다니 쯧쯧!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미친 계곡Valle de Rocas’이다. 돌들이 여러 가지의 모양을 연출하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인다. 말의 모습도 보이고 코가 큰 사람 같이도 보인다. 투어를 마치고 지프는 속력을 다하여 우유니를 향해 달린다. 피곤한 사람들은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다. 지난 이틀간에 본 것들이 꿈만 같다. 자연은 말한다.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볼리비아의 정글 ‘베니’로 가다
정글투어. 말만 들어도 왠지 설레면서 기대가 된다. 마치 내가 꼭 타잔과 함께 뛰어다니던 제인과도 같이 정글을 마구 누비면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넝쿨을 잡고 나르듯 오갈 수 있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항상 반대라고 정글로 가는 길은 버스 편으로 거의 20시간 동안 비포장을 달린다. 버스는 어떻게 엔진은 작동이 되어 달릴 수는 있지만 좌석이나 창문,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다 망가진 그런 상태이다. 다른 버스 노선은 다른 날에 떠난다고 해서 그 나마 떠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버스를 탔건만 버스 안은 디스코 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뿐 아니라 닭들도 타고 있다.
운전기사는 볼리비아의 최근 디스코음악을 최고의 볼륨으로 높이고 춤추듯 운전을 한다. 버스 운전사 옆에는 4명의 조수들이 함께 앉았는데 이들은 중간중간 손님의 짐을 싣거나 타이어를 점검한다. 운전기사는 이 젊은이들과 함께 코카 잎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음료수를 마시는데 나중에 에릭이 알려 준 바로는 음료수가 아니라 술이었다고 한다. 왠 음주운전?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구속감인데…그런데 이 운전기사 아무리 음악을 줄여달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잠깐 줄였다가 조절이 안 된다고 하면서 또 크게 하고… 엄청나게 커다란 소음에 내 귀는 먹먹하고 버스 승객들이 내뿜는 냄새와 차 안으로 들어오는 먼지 때문에 코가 막힌다.
악취는 ‘타이거 발삼’을 코끝에 발라 그럭저럭 견딜 만했지만 건너편에서 트럭이나 차량이 한 번씩 지나가면서 붉은 비포장도로의 먼지를 한번 뿜어대면 온몸이 먼지로 붉게 물들고 만다. 정비를 위해서 중간중간 버스가 서면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화장실을 찾아 용변을 보아야 한다. 그래도 그 편이 불결한 화장실보다 낫다. 그렇게 달려 온 곳, 루레나바케에는 새벽 2시에야 도착했다.
아침 8시30분에 배를 타고 말디디 자연국립공원으로 가는데 한가하고 평화롭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를 지나니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법석이었다. 도대체 왜?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우유병을 쪽쪽 빨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쩜 저렇게 생겼을까? 예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뭔가 특별해 보인다. 개미가 주식이라 이름이 ‘개미를 먹는 곰’(개미핥기)이란다. 겁을 먹으면서도 자세히 보니 눈은 아주 순하게 생겼는데 손톱인지 발톱은 아주 날카롭게 보였다.
동물들도 자기를 무서워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금방 영감으로 눈치를 채는 모양이다. 나는 반은 신기하고 반은 겁을 내면서 보고 있었고 개미핥기는 에릭의 무릎에 아주 날카롭게 생긴 손을 댄다. 에릭이 자기에게 지대한 관심을 주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다. 공원 관리자는 바지가 망가질 염려가 있으니 주의하란다. 한번 발톱을 긁으면 바지뿐만 아니라 다리에 상처가 아주 깊게 난단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물이라 기분이 묘했다. 내가 직접 우유병을 쥐고 먹이지 못해 아쉽긴 한데 아직도 ‘정글투어’하면 개미핥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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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코로이코에서 라파즈까지의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근 2000미터 높이의 비포장도로가 거의 오르막이고 아주 가파르다. 반대로 라파즈에서 코로이코까지는 2000미터가 내리막인 셈이다. 내리막의 스릴 때문에 이 길은 산악자전거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내리막의 스릴을 느끼면서 매초마다 변하는자연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그리 권하고 싶은 투어는 아니다. 일단 단체로 움직이기에 자유롭지 않고 자전거가 혹시라도 정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 길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라파즈에 도착해서 자전거로 내려왔을 테지만 미리 버스로 답사한 것이 잘한 일이다 싶다.
코로이코에서 융가를 달려 라파즈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는데 우린 앞좌석으로 예약을 했다. 10대중 1대는 꼭 사고가 난다고 들었기에 긴장이 되긴 했다. 길이 너무 좁고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차가 교차를 할 수 없어 후진을 해야 하는데 이때 사고가 많이 나거나 내려오는 차가 과속을 하여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은 터라 사실 미니버스로 올라가는 것도 은근히 걱정이 되긴 했다. 운전사 옆에서 융가의 낭떠러지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잠깐 현기증이 난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비명소리와 함께 급브레이크. 소리 지르기라면 나도 남 못지않은데 다른 여자가 지르는 소리에 너무 놀란 나머지 외려 내가 침묵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운전기사는 얌전히 가고 있는데 내려오는 차가 우리를 보지 못하고 막 달린 모양이다. 다행히 두 운전기사들이 재빨리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식은땀이 주르르… 우리 차가 10대중 1대에 해당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하지 않았기에 더 놀란 것 같다. 앞에 앉아서 내려오는 차가 올 때마다 운전사에게 차가 내려온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왜 못 보았는지? 운전수도 많이 놀랐는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곤 다시 떠나려고 했다. 차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하나 운전수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고개를 돌때마다 클랙션을 울리세요.” 라고 주의를 준다. 운전기수 또한 다른 운전기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우리를 사고 위험까지 몰고 간 반대편에서 오던 운전기사는 차를 조금 빼더니 미안하다는 표시로 손을 한번 들어 올리는 것이 다였다. 우리 운전사도 아무 불평도 없이 다시 시동을 걸어 그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간다. 어떻게 아무런 실랑이도 벌이지 않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만약 어느 한쪽이 조금 더 과속을 했더라면 큰 사고가 났을 텐데… 에릭은 운전기사에게 “조금 조심해서 운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니 기사 왈 “죽고 사는 것은 산신령이 하는 일이니 그리 겁낼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다.
융가에서 사고가 나서 설사 죽는 일이 있다고 해도 볼리비아 사람들은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볼리비아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믿음도 가지가지라지만 그래서 사고일보 직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게 태연했구나! 이해는 갔지만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이렇게 위험한 구간이면 시간을 정해서 내려오는 차와 올라가는 차를 구분하면 될 텐데 이네들이 조금 미련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아닌가?
Coroico시장의 양념
볼리비아 3
세상에 이런일이! Que pasó, pasó
에릭, 사고로 자전거를 잃다
펑! 아주 큰소리가 헬멧을 뚫고 들린다. 그 순간 반사 작용처럼 뒤를 쳐다보니 에릭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자전거를 급히 세우고 달려가니 에릭은 간신히 일어나고 에릭의 자전거는 완전히 부서져있다.놀란 강사범님이 달려 오시더니 택시 운전사의 어깨를 힘차게 때리면서 “무슨 일이야 Qué pasá?” 몹시 화난 목소리로 물으신다. 겁이 난 택시 운전기사는 “난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냥 서있었는데 몰라요 어떻게 일이 벌어진 것인지.” 대답하면서도 벌벌 떤다. 강사범님의 태권도 실력이 나타난 것이다. 사범님은 택시 운전기사가 잘못을 한 줄로만 알고 화가 나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에릭의 방심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면서 자전거 시계를 맞추다가 샛길에서 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택시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 택시를 비켜가면서 “왜 하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 사고 나기 딱 좋겠네.”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릭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잘 피하겠지…” 했는데 참 예감이란 무섭기조차 하다. 병원에 가니 뼈는 부러지지 않았단다. 설령 부러졌다고 해도 갈비뼈 안쪽의 가는 뼈들은 엑스레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압박붕대 같은 것으로 조여 놔야 이상 뼈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한단다. 에릭이 기침을 할 때 가슴이 무지 아프다고 감싸는 모습을 보면서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이 난다.
“기분 좋게 안데스 산맥을 향해 떠나는 우리에겐 이건 형벌이나 마찬가지구나”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떠나려고 해도 자전거 프레임이 와야지만 떠날 수가 있다. 난 더 이상의 무모한 경험은 그만하자고 여행을 포기하자고 했지만 에릭은 그럴 수 없단다. 사고를 수습하면서 한국의 형제들에게 알리니 당장 그만두라고 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남동생은 블로그에다가 “가다가 포기하면 안 가느니 못하니” 라고 글을 남기고 여동생들도 이왕 하는 것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란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가장 놀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줄 알았건만 반응은 역시 의외였다.참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여행경로를 남미에서 북미를 거쳐 호주로 변경할까 어쩔까 별별 생각을 다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는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그래 이 흥미로운 볼리비아와 페루의 마추픽추를 포기할 수는 없어!”
에릭 자전거 찐빵이 되다니
시작을 바람과 함께
바람, 그것도 맞바람이 마구분다. 막상 자전거로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하다. 자전거를 놔두고 3개월간 볼리비아를 여행할 때는 다시 자전거로 여행할 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떠난다고 하니 꼭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런 설렘과 함께 험한 길을 가야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베니를 여행한 후 이상하게 컨디션이 많이 저조해진 것과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고마운 자전거는 흔들리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앞으로 쑥쑥 나아간다. 드디어 자전거로 다시 여행을 하는구나. 이 자유!
정말 좋다. 자그마치 3개월 만에 느끼는 신선함과 자유로움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싱그러운 초원의 냄새와 소들의 평화로운 모습. 바람이 불어 닥치더라도 싸우면서 나아갈 용기가 난다. 아마 그만큼 자전거를 타고 싶은 욕구가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 30분쯤 달렸을까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기 시작하더니 바람은 짖궂게도 모래를 얼굴에 퍼붓는다. 모래가 눈에 들어가 앞이 보이지 않고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몇 번의 위험스러운 고비와 더 심하게 불어대는 모래바람과 작열하는 더위가 힘들게만 느껴진다. 또 몸이 그 동안 많이 굳어 아프다. 엉덩이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독감이 낳은 줄 알았는데 목까지 다시 아파온다. 아마 더위와 모래 때문에 더 심해진 것 같다. 가끔씩 도로 위에 그냥 서서 물을 마시고는 앞만 보고 달렸다. 옆을 볼 수도 없었고 온 몸을 집중해서 모래바람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산타크루즈지역은 8월, 9월이 강한 바람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하다고 한다. 극심했던 아르헨티나 바람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도로 곳곳은 공사중인데 이곳에 쌓인 흙이 바람과 함께 한 번에 확 밀려오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제자리에 설 수도 없다. 요한 신부님이 헤어지면서 하신 말씀이 다시 생각난다. “고생을 왜 굳이 사서 하려고 하느냐?” “고생이 아니라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이라고 당당하게 말을 했건만 “고생을 사서 한다.”라는 말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들이 금방 고생으로 변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만은 그래도 3개월만의 첫날 자전거 행군은 행복 그 자체였다.
가자니 힘들고 끝내자니 아쉽고…
궂은비가 내리니 하루만 더 있다가 가자고 하는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고집대로 아침에 떠나온 에릭이 얄미워진다. 비가 내리고 나더니 해가 나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러 시간 무리해서 달리기를 했더니 허리가 끊길 듯이 아프다. 아프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나오기 시작해서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에릭은 나를 다독여주지 않는다. 울면서도 “참, 서럽다.”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내가 갈 곳은 정녕 어디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서러워졌다. 이런 마음의 동요까지 겪으면서 여행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스럽기만 했다. 어두워서 캠핑 할 장소를 찾는 것도 문제였다.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을 간신히 떨쳐내고 한 아이를 앞장세워 일단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당을 찾아 갔다. 마침 성당에는 미사가 있는지 문이 열려 있었다. 수녀님께 사정이야기를 드렸더니 몇 분 되지 않아 폴란드 토마스 신부님께서 나오시더니 성당에서 짓는 교육관이 있으니 머물고 가라고 배려해주신다. “오! 주님.”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그 조그마한 마을에 외국 신부님이 계시고 잠을 잘 수 있는 방도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폴란드에서 오신 토마스 신부님은 다음날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며칠 만에 든든하고 맛있게 하나님과 함께 한 아침식사였다. 사실 그날은 결혼 12년 주일이었다. 축복 받은 아침 식사를 마치긴 했지만 에릭하고는 계속 냉랭했다. 나도 자존심이 있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에릭이 마냥 서운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자연을 만끽한다는 것이지만 그것도 도로 사정에 따라 다르다. 그 동안 여행이 힘들게 느껴지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에릭은 나를 사랑스럽게 다독여 주었다. 오로지 그것이 나에 대한 위로였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끝내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아직 볼 것이 많은데 그만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 같기도 하고… ” 나는 ‘여행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닌 지’를 결정하는 유예기간인 7주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Bulo Bulo의 폴랜드Thomas신부님
볼리비아 최악의 마약지대의 태권도 사범님
파인애플까지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 ‘룰루랄라’ 달리고 있는데 앞으로 가던 에릭이 갑자기 서더니만 날 보고 손짓을 한다. 복싱을 하는 그림 밑에 아주 또렷하고크게한국말로‘김준규’라고쓰여 있는 광고표지판이 보였다. 광고표지판은 건너편 도로에 있어서 보기가 쉽지 않은데 에릭이 찾아낸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에릭이 한국말을 기초라도 익힌 것은 정말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에릭이 국어공부를 더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은 매번 남는다.에릭은 “이런 시골에서 한국 사람이 체육관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고 반가우니 잠깐 들려서 인사라도 하자”고 제안한다. 에릭은 나보다도 한국인을 만난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자전거여행 중인데 지나가다가 한국 표지가 있어 너무 반가워서 인사나 하고 가려고 왔습니다.”
‐ 한국사람이라구요? 어서들 오세요. -
아주머니는 우리 얼굴이 까맣게 타서 한국사람 같지 않았단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우리에게 시원한 보리차를 권하셨다. 아주머니의 성함은 박종옥.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곳이 볼리비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마약의 소굴 ‘차바레’. 볼리비아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다. 예전에는 한 낮의 큰 길에서도 총싸움이 많이 벌어졌단다. 글쎄 우리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곳으로 지나 갈 수 있었을까?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전 지식이 부족한 것도 좋을 수 있다. 좋지 않은 내용도 너무 많이 알게 되면 괜히 불안해지지 않는가.사범님과 아주머니는 볼리비아에 살게 된지 벌써 20년이 넘었고 이곳 차바레에는 18년째 살고 계시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태권도 사범이 차바레에마약을하러 들어간다”고 이상한 소문을 내기도 했고 캄베치노(볼리비아 농촌 사람들)들은 “당신들이 왜 이곳에 들어 왔냐”며 무시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고초가 많았다고 한다. 캄베치노들의 횡포는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심했지만 김사범님은 한국에서 줄곧 해온 보디빌딩으로 건장한 체격인데다가 태권도로 다져진 체력이어서 괴롭히려는 사람들에게 실력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 같다고 그러는 사이에 “김사범님 내외분이 열심히 사시고 태권도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 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사범님 내외분은 돈 한 푼 없이 이곳에 도착하여 다른 사람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성장을 했다. 대부분의 한국 교포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 두 분이 볼리비아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에릭은 흐뭇하고 감동스러운 모양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김사범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에릭은 사범님이 ‘뽀빠이’란다. 올해 나이 예순 넷이신데 보디빌딩을 하셔서 몸매도 좋으시고 아주 힘이 세기 때문이다.사범님은“이렇게체력이받쳐주는 것은 원체 부지런한데다가ㅇ주머님이 만들어주시는 한국된장 덕분”이라고 한다.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꽃과 화초를 가꾸고 손수 담근 된장국과 고추장을 식단에서 빠뜨리지 않으신다. 드디어 우리도 그 된장국을 먹게 되었다. 음~ 우리 여행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 중의 하나였다.
볼리비아의 마약소굴지역에서 평화롭게 사시는 김사버님 내외
공룡 발자국을 찾아라!
코차밤바에서170킬로미터에 위치한 ‘토로토로 자연국립공원Toro Toro Park’에 가면 공룡 유적과 만날 수 있다. 코차밤바뿐만 아니라 수크레 근교에도 디노사우리아 파크라고 하여 몇 백만 년 전에 공룡이 다녔던 흔적도 볼 수 있다. 볼리비아 곳곳에 공룡의 흔적이 많다고 하여 한번은 보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코차밤바에서 알게 된 강진원 사범님도 워낙 여행을 좋아하시고 볼리비아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기에 혹시 “토로토로 자연국립공원을 가보셨느냐”고 여쭈니 “10년 전인가 한번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함께 가자”고 하신다. 2년 전인가 제자가 다녀왔는데 제자가 길을 잘 알 터이고 “쇠뿔도 단 김에 빼자”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자에게 전화를 하신다.
당초 2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건만 5시간을 달렸어도 국립공원 표지는 나타나지를 않는다. 모두가 피곤해하는데 갑자기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서로 오른쪽, 왼쪽 의견을 교환하다가 그냥 왼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가벼?” 다시 갈래 길로 돌아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달렸다. 맞은편에서 오는 운전기사에게 물으니 길은 제대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1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단다. 공룡 발자국 한 번 보기 힘들구나. 이런 산속이니까 공룡이 살았겠지!
내바이 공룡처럼 자랄 수 있을까!
에릭, 미니스커트의 여인네들에게 납치(?)되다
수크레에서는 의상과 음악이 매우 독특한 축제 ‘비르겐 데 구아다루페Virgen de Guadalupe’ 9월 6일부터 4일간 열렸다. 첫날은 학생들과 시골사람들이 시가행진을 하면서 대성당 앞까지 가서 성모마리아 상에 기도를 드리고 둘째 날은 수크레 주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행진한다. 라파스에서 본 그란 포데어Gran Poder 축제와 비슷하기도 한다. 20킬로그램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가면까지 쓰고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흥겹게 춤을 추는 남자들, 초미니 스커트에 팬티가 다 드러나도록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추는 여인네들, 각 부락의 특징을 한껏 뽐내면서 전통 춤을 추는 팀, 아직 음악에 대한 감은 없지만 흥에 겨워 박자에 맞지 않게 춤을 추는 아이들, 머리에는 칠면조 같은 것을 얹고 춤을 추는 팀, 악마를 쫓는다고 악마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들, 차에 각종 장식을 하여 소원을 비는 사람 등… 2006년도에 참가한 56개 팀의 음악과 춤은 다양하고도 멋지다. 어쩌면 그렇게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지 놀랍기만 하다. 축제기간 동안 춤을 추기 위해 거의 반년동안은 준비한다고 한다. 참가비용도 볼리비아사람들 수준에는 비싼 편이고 의상비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죽을 때까지 큰 영광이며 은혜로 여긴단다. 게다가 한번 축제에 참가해서 춤을 추면 3년은 연속해서 참가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미신이 있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계속하려고 한단다. 심지어는 직장을 잃는 손해도 감수하면서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한단다.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비용으로 성모마리아를 위해 기도하는 가톨릭 사상과 온갖 심신을 기울여 춤과 노래를 바친다는 무속신앙이 결합된 것도 같다.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남미의 대부분 국가는 가톨릭이지만 무속신앙이 접목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축제 몇 달 전에는 무속신앙형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축제당일에는 수크레대성당 앞에 차려진 성모마리아 상에서 두 신부님이 성수를 뿌려주는 것으로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다. 축제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음악에 맞추어 어깨가 덩실덩실 흔들린다. 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잡아 당겨 함께 시가행진을 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아주 쉽게 보이는 춤이지만 막상 따라 하려면 몸이 생각보다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도 한번 배워 볼까”하고 잠시 따라 하는 사이에 에릭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에게 끌려가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다.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에릭이 나타나지 않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대성당 앞과 광장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꺽다리 에릭이 눈에 뜨이질 않는다. 여자들에게 끌려가서 춤판을 벌여도 열 번은 더했을 시간인데 올 생각을 않다니…축제 기간에 흔히 발생하는 도난, 강도 사건은 외국관광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지고 걱정이 더 되간다. 혹시나 잃어버리면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자니 머리에 화려한 깃털을 꼽고 실실 웃으면서 걸어오는 한 남자. “미니스커트 아줌마 부대들이 놓아주질 않아 겨우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 머리에 꼽은 알록달록한 깃털은 뭐예요?”
‐ 정표래? ‐
“무슨 정표?”
‐ 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가 자기 머리에 꽂았던 장식을 에릭에게 꽂아주며 “절 잊지 마세요.”했단다. 게다가 어른처럼 볼에 뽀뽀까지 하면서…
“그래, 좋기도 하겠다! 흥! 날 끌고 가는 남자들은 왜 없는 거야?”
춤추는 쫄리타
T춤추는 캄페치노
볼리비아 4
기다림이란
하늘 아래의 첫 호수 ‘티티카카(Lago Titicaca)’
물이 그립다. 아니 바다가 그립다. 강원도 동해안의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듣고 싶다. 고향은 아니어도 고향 근처만 가게 되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경포바다를 보고 자라서 오랫동안 물을 보지 못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물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하다. 바다는 아니지만 티티카카를 향하는 나의 마음은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와도 같다.
8시가 되니 버스에 관광객이 찼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라파스 버스터미널을 벗어나 알티플라노에 도착하니 가슴이 서서히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언제 그 복잡한 매연에 시달렸나 싶다. 알티플라노의 풍경은 한가하다. 바삐 움직이는 차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90킬로미터쯤 달리니 파란 하늘이 땅에 내려앉은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하늘인가 물인가? 너무 파래서 꼭 그림 같다. 하늘이 아니라 물이다. 드디어 티티카카 호수가 시작된다. 티티카카호수는 기다리는 마음도 설렜지만 실제로 보니 더 마음이 벅차다. 버스에 사람들만 없었더라면 나는 “와!” 하고 탄성을 불렀을 것이다. “어쩌면 호수의 색이 저렇게 파랄 수가 있을까?” 나만 얼굴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들이 모두들 환해 보인다. 물은 역시 정제하는 힘을 가진 모양이다. 버스는 9킬로미터에 걸쳐 꼬불꼬불 아스팔트길을 질주한다. 그 모습이 광대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같다.
호수를 낀 산등성에는 나무 한 그루 없다. 녹색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누런 야생 초들이 뒤덮고 있는데 등성이 위에서 마구 굴러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런 등성이를 하나 지나면 다음 등성이 그리고 또 호수가 보인다. 호수 가장자리와 등성이 곳곳에 집들이 있는데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가끔 양들과 라마를 모는 목동들이 보인다. 자전거로 이곳을 달렸더라면 여자목동들과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독일에 주문한 자전거가 제때 도착하면 잠깐이라도 이 티티카카호수를 달려보고 싶다. 가도 가도 호수는 계속 보인다. 티티카카호수에는 36개의 섬이 있다고 하니 그 규모는 짐작할 수도 없이 크다는 소리이다. 8,300평방킬로미터… 남미에서 가장 크다.
관광지로 유명한 코바카바나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수가 보이는 곳에 방을 잡기로 했다.. 창문을 통해 원 없이 호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내의 가구들도 고풍스럽고 벽에도 독특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위치나 시설이나 모두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 지난 열일곱 시간에 걸쳐 쌓여있던 먼지를 씻어냈다. 뜨거운 물이 나오다가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나오고 정신이 없다. 전기 샤워란다. 그래도 정신없이 씻고는 햇볕이 내리 쬐이는 곳으로 나왔다. 머리에 내리 죄이는 햇볕이 따뜻하다. 호수를 보고 있자니 사고로 인해 마음속에 무엇인가 응어리 졌던 모든 것이 풀리는 듯한 분이다. 그립던 물을 보니 살 것 같다.
아! 행복하다.
Copacabana의 제례의식
라파스야 안녕!
라파스를기점으로티티카카LagoTiticaca,융가스LosYungas,알티플라노Altipano, 발예 델 라 루나Valle de la Luna, 티와나쿠Tihuanaku 등 역사적인 유적지를 방문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볼리비아의 수도는 ‘수크레’이지만 실제적인 수도는 라파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의 규모도 크고 광대하다.라파스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이나 도시를 방문하려면 반드시 라파스를 거쳐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세 번이나 라파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라파스는 그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정도로 다양성을 갖춘 도시이지만 볼거리가 많은 대신 어수선하다는 것은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라파스는 우리가 이 도시를 떠날 때에도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광산촌의 주민들이 데모를 하는 터라 우리는 이곳에서 꼼짝달싹을 못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서비스차원에서 일반 버스 요금의 두 배 정도 되는 요금으로 군용항공편을 제공한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떠나려고 하는 날에는 군용항공편도 떠났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처럼 정보가 늦은 사람들은 이들이 흔히 말하는 논쟁‘빠로Paro’이 끝나야지만 움직일 수 있다.코차밤바나 산타크루즈로 가야 되는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 붙잡혀 있다. 볼리비아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자칫하면 도로도 일방적으로 폐쇄시켜서 일반인들의 통행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버스터미널에 가니 데모의 형태가 아주 심각하게 되어간다고 한다. 폭탄까지 설치했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정부에서 제공하는 군사 항공편이 뜰지도 모른다는데 우리는 공연히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가야 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우리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독일에서는 이미 자전거를 보냈으니 조만간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전거가 올 때까지 코차밤바까지 가지 못하면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볼리비아 비자가 10월 12일이면 만료되기 때문이다. 4일째 되는 날 아침 터미널에 가니 버스가 정상운행 된단다. 휴! 안도의 숨이 내쉬어진다. 볼리비아 버스는, “버스가 떠나야지 떠나는 구나”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버스 편을 예약하고 짐을 꾸려 나왔어도 마음이 불안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갔는데 또 못 떠난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버스는 코차밤바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온다.
티와나쿠
아이마라 문화, 태양의 문, 티와나코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라파스에서 7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할 것을 권하고 싶다. 도자기 박물관이 있고 석벽(石壁)에 사람의 얼굴 형상이 있는 유적, 제주도의 고인돌과 같은 유적 등을 만날 수 있다. 잉카 및 남미 문화의 발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에 관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서도 특이한 것은 ‘태양의 문’이다. 동지날에 해가 뜰 때면 태양의 문으로 빛이 통과한다고 하며 이문을 통해서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Tihuanaco유적지
독일서 보낸 프레임 두 달 걸려 도착하다
독일서 보낸 자전거 프레임은 두 달만에 볼리비아에 도착했다.
감격스러운 날.아침 8시 때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자전거 프레임이 온 것 같은데 9시까지 영사관으로 나오실 수 있나요? 함께 세관원에 가야죠.”“예? 프레임이 왔다 구요?”
정신이 몽롱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전날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느라 안 그래도 새벽 5시에 자서 3시간밖에 잠을 못 잔데다가 그토록 기다렸던 자전거 프레임이 도착했다니…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 먹고 독일 영사관으로 가니 엘케Elke씨가 세관에서 온 서류를 보여 주면서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단다. 자전거 프레임을 보내기 전에 정확한 주소가 필요했고 또 세금을 적게 물기 위해 독일 영사관에 협조를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독일 영사관에서는 아주 문제없이 그렇게 해 주었고 또 함께 가주겠다고 하니 고맙기 그지없다.관세청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무슨 서류가 그리 복잡한지 모른다. 먼저 보낸 물건의 용도와 가격을 우리에게 묻는다. 무조건 선물이라고 대답하자고 이미 입을 맞춘 터라 선물이고 가격은 한 100 달러 정도 된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라고 엘케씨가 말하니 인터넷에 프레임 가격이 나올 리가 없을뿐더러 아직까지 볼리비아 세관원들은 자전거 프레임을 취급해보지 않은 터라 미적미적댄다. 세관원은 엘케씨에게 당신이 영사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정직한 것으로 믿고 그에 합당 하는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다. 관세는 98 Bolivianos였다. 그리고 수고료가 5BS추가 되었다. 여러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관세는 은행에 지급하란다. 아마도 세관직원들의 부정을 막기 위한 방법 같아 보였다. 프레임을 찾아 들고 나오는 에릭의 얼굴에는 환희와 기쁨이 가득 했다. 나도 모르게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드디어 자전거 프레임이 왔어. 바로 우리 자전거의 몸체 말이야! 이제 프레임을 조립하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강사범님 댁에 도착하니 사범님은 슬프시단다. 우리는 그동안 민폐를 끼쳐드렸다고 생각을 했었건만 강사범님은 그동안 정이 많이 드셨다며 무척 아쉬워하신다. 우리도 강 사범님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서운하다. 하지만 여행자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하지 않는다. 머무르는 사람은 이미 여행자가 아니다.
강사범님의 태권도 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