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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1
비,비,비

국경을 넘어 칠레로
칠레 국경을 넘을 때는 과일이니 야채 반입이 아주 철저하게 금지 되어있다고 하여 아르헨티나에서 가져온 과일과 음식을 꾸역꾸역 먹고 국경 검사실에 갔다.국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 다들 나와서 우리를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서류 작성도 아주 간단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은 것이 모두 다다. 예전 여행 때 이스라엘에서 이집트 국경을 넘을 때처럼 자전거도 엑스레이기계 통과를 시키고 자전거 가방의 물건들도 일일이 다 검사했다면 정말 하면 번거로울 텐데 가방 한 개만 열어서 손을 집어넣어 조사하고 개가 와서 킁킁 냄새를 맡아 보고는 묻는다.
“이 가방에 전부 뭐가 들어 있어요
“옷가지, 약, 캠핑 장비, 자전거 부속품입니다
“음식물과 과일은 없죠
“예, 다 먹고 치워버렸는데요
“칠레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칠레사람들은 거만하고 물가도 비싸며 국경 넘을 때 무척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의외의 일이다. 첫 느낌이 너무 좋다.국경에서 다음 마을까지는 2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란다. 검문소 직원들은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그곳에서 캠핑을 하고 가란다. 하지만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도로 공사 직원이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라는 곳에 가면 온천을 할 수 있다고 했기에 어두움이 몰려오는 길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25킬로미터를 가면 온천이 있다고 하니 따뜻하게 온천욕을 하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릴 거야그런데 국경검문소 직원들의 충고를 들을 것을 그랬나보다. 어두워서 도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불을 켜도 길이 잘 보이지 않고 도로 곳곳에 패인 곳이 있어 ‘’하고 부딪혀 놀라기 일쑤고 자주 넘어졌다. 게다가 안데스 정상을 오를 때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눈에 경련까지 일었다. 그렇게 가다보니 캠핑장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이제 10킬로미터가 남았다. 그때 뒤에서 오던 차량이 깜빡이를 켜면서 우리 옆에 차를 세웠다. 국경에서 우리와 사진을 찍었던 로드리고였다. 갈 길이 아직 멀었고 오르막이 심해 정말 위험하니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잔다. 칠레사람들은 운전을 험하게 하고 특히 국경지역은 더 심하다고 한다. 에릭은 또 싫다고 한다. 10킬로미터는 1시간도 안되어 도착할 텐데 천천히 가면 된다고 했지만 난 브레이크를 걸었다. 어두워서 도저히 안 되고 무엇보다 위험요소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전거가 로드리고 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에릭은 자전거를 분해해서 집어넣어야 한다고 에릭은 또 투덜투덜이다. 자전거를 한번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착한 로드리고는 추운데 벌벌 떨면서 우리가 의견의 일치를 볼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자전거 분해 하는 것도 도와준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고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아구아 칼리엔테에 도착해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니 하루 숙박비가 미화 150 달러란다. 도저히 묵을 수 없는 가격이다. 로드리고는 다시 우리를 엔트레라고스 Entre Lagos까지 데려다 준다. 방갈로에 도착하니 주인집 낸시 아줌마가 우리를 마치 딸과 사위가 온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루 숙박비는 미화 15달러. 1/10 가격이다. 안데스 산맥을 넘어온 피로를 따뜻한 샤워로 풀고 낸시 아줌마가 만들어준 맛있는  가수엘라 국을(칠레의 전통 국 요리. 우리나라 육개장과 같은 맛이며 고기 덩어리에 감자, 옥수수, 쌀이 함께 들어가서 우리 입맛에 잘 맞다.) 먹고 나니 힘이 펄펄 난다. 국경도 잘 넘었고 첫 인상도 좋고 칠레 여행이 아주 순조로울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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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칠레의 도로 표지판


오리 아주머니, 칠라 아주머니
엔트레라고에서계속 비가 오고 칠레 전역이 장마란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도망가면 날씨가 좋지 않을까 싶어 다섯 시간 거리에 위치한  칠루에 섬Chiloe  의 수도 가스트로Castro에 도착했다.역시 비 때문에 약간 음산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다. 길에는 술주정꾼들이 눈에 많이 뜨였다. 돈을 달라고 옷을 잡아당기고 제대로 걷지 못하게 방해까지 하니 섬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 없다. 사진으로 섬을 보았을 때는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는데 이게 웬일일까? 역시 사진은 항상 모든 것의 단면만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호수 주변의 숙소를 찾아 비의 낭만을 즐기려고 찾다보니 등성이에 한 숙소가 보였다. 계단을 많이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창문에는 진짜 오리는 아니지만 예쁜 노란색 인형 오리가 4마리가 조르르 진열 되어 있다. 너무 귀엽고 이렇게 장식을 해 놓은 곳은 왠지 마음에 들것 같은 느낌이다. 정정하신 아주머니가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방은 많이 있으니까 들어와서 보고 결정하시오. 욕실은 공용인데 지금은 손님이 없으니까 독실이나 마찬가지라오깔끔하고 짱짱한 아주머니 모습처럼 방도 깨끗하고 일단은 호수가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고 방도 깨끗했다. 빨리 씻고 추우니 내려와서 불을 쬐란다. 머리가 젖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조심하라면서 당부당부시다. 머리를 감고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다 내려가니 아주머니가 어찌나 반가와 하시는지 그동안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푸셨다. 내가 이해를 다 하던 말던 신경 쓰시지도 않으시고… 밤 12시가 되어도 보따리를 다시 묶을 생각을 하시지 않으니 피곤하고 눈이 감긴다.
“아주머니, 저 이제 피곤하니 내일이야기 해요
“젊은 것이 피곤하긴, 난 아직 초저녁인데. 더 들어하시면서 재방송이셨다.
에구에구. 괜히 내려왔군. 피곤해 죽겠는데 손까지 꼭 잡으시고 이야기 하시니 손을 뺄 수도 없고 이런 일을 어쩌지? 에릭이 내려와서 다행히 아주머니가 이야기보따리를  묶으셨다.칠라 아주머니는 내가 딸보다도 더 정이 간단다. 아주머니 집에 짐을 풀고, 미니 버스를 타고 주위를 돌아보겠다고 하니 "내가 구경할 대상이지, 나만 보고 있으면 칠레 역사가 다 생각날 거야
하시면서 하루는 비가 많이 온다고 막 못나가게 하시는 것이었다.
겨우 아주머니를 설득 시켜 나와서 구경을 했지만 말이다.
성당Cathedral: 가스트로에는 외형 및 내부가 모두 나무로 지어진 성당Cathedral이 있는데 볼만한 건축물이다. 1906년 이태리 건축가 Eduard Provosoli가 설계하여 오렌지와 보라색의 색상으로 지어짐, 지금은 색이 바라서 오렌지색이 노란색으로 보이지만 해가 날 때 자세히 보면 보라색과 오렌지색이 혼합되어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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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트로의 나무 성당


나를 사랑한다는 안토니오의 고백
 리오부에노에서 파이라코까지는 고속도로에 비상도로가 있어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파이라코에서 발디비아까지는 국도이고 비상도로가 없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무를 운반하는 차들이 워낙 빨리 달리는데다가 나무 조각이 도로에 떨어져 있어서 특별히 조심하면서 달려야 한다. 그리고 또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 나를 괴롭게 만든다. 발디비아에 도착하니 강을 따라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고, 젊은이들이 강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워있고 대학도시라는 기분이 들었다.발디비아에 도착한 것은 잘한 일인데 비가 우리를 따라 온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7일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왔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친절한 숙소에 머물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숙소 주인은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칠레에서 산지 오래 되며 아들이 두 명이다. 한 아이는 대학생이고 다른 아들은 초등학생이다. 함께 부엌을 이용할 수 있는 터라 자주 요리를 해서 먹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 하루는 큰아들이, “엄마가 생신인데 친척들을 초대하였으며 음식을 많이 해야 하고 특별한 음식을 해야 한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우리는 김치와 불고기를 준비해주기로 하고 슈퍼에 가서 한국 간장은 없지만 중국간장을 사서 고기를 재워놓고 배추대신 양상치를 소금에 절여서 비슷하게 솜씨를 냈다. 칠레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선보인다는 자부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요리를 하고 내가 생일상을 차리다시피 하여 음식을 장만했다.그런데 이게 웬일? 초대받은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고 음식도 다 준비가 되어 당연히 에릭과 나도 함께 참석할 줄 알았건만 자기들만 들어가고는 거실문을 쏙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종교 때문에 그런가? 조금 있다가 부르겠지…” 방에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가물치 콧구멍이다.
내가 씩씩거리면서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하니 에릭은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라며 감수하란다. 감수 안하면 또 어쩌겠어.  내가 준비했다고 스스로 거실로 뛰어들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 순간 누가 노크를 한다. 자는척하고 나가지 않을까 하다가 ‘누구세요’하고 문을 여니 한 20명 되는 친척들이 모두 문 앞에 서있었다. 하나같이 다들 쑥스러워하는 얼굴을 하면서 너무 특이한 음식을 먹게 되어 감사하단다. 그리고 대표되는 사람이 꽃을 한 송이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감사하다는 말만하고는 다들 계단을 내려가더니만 집으로 가버렸다. 꼭 엎드려서 절 받는 기분이니 정말로 아르헨티나랑 너무 다르다. 40대 생일인데 이렇게 조용하게 파티가 끝나고 나에게 하는 행동도 너무나 소극적이라고 할까 조용조용하다. 그동안 아르헨티나의 화끈하고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비해 너무나 반대되는 현상을 보니 갑자기 이상해진 걸까?
다음날 큰 아들에게 물으니 자기 식구들이 파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라며 혹시나 내가 기분이 상했을까봐 미안해한다.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주인집 막내아들 안토니오가 자기가 가장 많이 맛있게 먹었다면서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것은 처음 먹어 보았다며 나에게 볼에다가 뽀뽀를 해도 되느냐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안토니오는 내가 요리할 때마다 자기가 도와줄 일이 없냐고 와서 묻고 인터넷이 잘 안될 때 고쳐주며 7일 동안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떠나기 전날 주인집 아줌마가
‘안토니오가 우리가 떠난다고 방에서 흐느끼며 운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서 기념으로 강릉 배지를 주니 눈물만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토니오의 머리에 뽀뽀를 해주고 방으로 돌아와서 자려고 하는데 방 밑으로 뭔가 슬며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안토니오가 보낸 짧은 편지였다. “사랑해요, Eric & Marina”
“안토니오!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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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비아의 전통적인 가옥


칠레 2
오르락 내리락

다들 입 다물엇!
이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자전거를 직접 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길에 대한 감각이 없다. 물어보는 사람이 잘못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우린 매번 한 지역을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다음 목적지의 숙박 상황과 길에 대한 사정을 묻곤 한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고 한편 위험 지역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지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하루에 3번 정도의 30도의 급경사를 자전거로 올랐다 내렸다 해 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안다. 그러니까 동해안의 정동진을 오르락 내리락 한 10번만 하면 정말로 아름다운 정동진이 보기 싫은  느낌이 들 것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남자들의 야유소리는 정말로 짜증난다. 야유가 격려가 될 수도 있겠지만 힘든 날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 “다들 입 다물어하고 돌멩이를 입에다가 물려주고 싶다. 내가 어쩌다 이리 성질이 나빠졌는지…
빅토리아Victoria에서 트아리귄트라이귄Traiguen까지는 자전거타기에 즐거운 구간이다. 길 양 쪽으로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피어 있고 가로수도 예쁘게 심어져 있어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스릴을 맛보면서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트아리귄에서 로스 사우세스Los Sauses까지는 죽을 맛이었다. 오르막을 올랐다 싶으면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 5번 정도 있었을까. 쉬고 싶어도 자전거를 기대어 놓을 데가 없어 발로 페달을 지탱하고는 잠깐 쉬고 또 끌고 가야만했다. 힘들다 그리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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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과 장난을 치는 개


Villarica라는 곳에 스위스 자전거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에릭을 꼭 그 부부를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Claudia 와Beat는 1995년부터 97년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었고 Villarica 에 도착했을때 여행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스위스와 느낌이 비슷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는데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은 셈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딸 한명에 호스텔"Torre Suiza“ 주인으로 자전거 여행객이었던 느낌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었다.  이곳을 Villarica 화산이 관광지로 알려져 있어서 끊이지 않고 유럽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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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larica화산

타이어, 세 번이나 펑크 나다
날씨도 덥고 길도 콘스티투치온까지는 얼마나 경사가 많던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펑크가 세 번씩이나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마도 에릭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 모양인데 자전거를 비상도로에 세우고 뒤집어서 펑크 때우는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달려도 달려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 어디든 앉을 자리만 있으면 좋겠다 싶어 달리다 보니 고속도로의 표지판 밑이 보인다. 더운물 찬물 가릴때가 아니다 . 일단 요기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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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어떠랴. 요기만 할 수 있다면

아만사도 빵 아줌마
콘스티투치온에서 탈카로 가는 길은 정말로 좋지 않다. 도로사정도 안 좋은데다가  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 그리고 작열하는 더위… 한숨이 절로 나오고 온몸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우리의 목적지인 탈가로는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덥고 힘들어 도로에 식당이라도 나오면 구걸을 하는 상황이 있더라도 쉬어 가려고 작정을 했다.중간쯤 갔을까 식당이 보인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웨이터에게 숙박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방도 있단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물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오더니만 방이 다 찼단다. 글쎄, 우리 생각에는 충분히 방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를 거절 하나?  에릭이 주인을 찾아 나섰다. 주인여자의 동생이 처음에는 방이 있다며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말을 바꾸어 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방이 없다면 캠핑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주인인 언니랑 이야기를 해보란다. 여주인은 일단 체격이 너무 크니까 주눅이 들고 무뚝뚝한 얼굴이어서 말 붙이기가 참 어려웠다.  내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캠핑을 하자고 에릭을 설득 시킨 후 에릭이 말을 건넸다. 여주인은 한참을 망설이더니만 방이 있기는 호텔처럼 깨끗하지 않고 욕실도 공용이고 산에서 나무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가끔 썼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행객이고 관광객이 아니므로 너무 신경 쓰시지 말고 하룻밤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렇게 하겠다며 나중에 불평은 하지 말란다. 식당 뒤에는 아예 호스텔처럼 집이 한 채 있고 방도 많았다. 다 텅텅 비어있었고 다만 청소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우리는 빈대에 물릴까봐 약을 치고 침대를 점검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고 주인아줌마가 침대시트도 싹 빨아서 빳빳하게 다린 것을 준다. 그리고 샤워하고 정리되면 맛있는 저녁을 준비 할 테니 식당으로 오란다. 처음에는 무지 무섭게만 보였는데 사람은 역시 겪어보아야 안다. 꼭 동네 아줌마를 만난 그런 분위기를 주니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정원을 둘러보니 빵처럼 동그랗고 뚱뚱한 아줌마가 우리를 반가워하면서 빵을 만들고 있다며 구경하란다.
하루에 나무불로 빵을 200개 이상 굽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드는 빵의 이름은
‘아만사도’이다. 저녁식사 때 우리는 금방 구워내 온 빵을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었다. 한 3개쯤 먹고 또 달라고 하니 빵을 주시지 않는다. “빵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아줌마처럼 빵보다도 더 뚱뚱해 진다”면서 조금만 먹으라며 익살이다. 

자전거, 말로
변신하다
칠레에는 북에서 남으로 한 개의 도로(일명 Pan America)만 길게 뻗어 내려있어서 정말 불편하다. 비상도로를 편안하게 달린다는 장점은 있지만 칠레의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수많은 차량들이 매우 빨리 달리므로 칠레 자전거 여행자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팬 아메리카 도로가 싫다면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짐이 많은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일이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내 짐이 70킬로그램인데 경사가 많은 비포장도로는 자살행위와도 같다. 지도를 보니 해변에도 도로가 있고 포장도 되어있다고 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해변을 향해 달려갔다.역시 힘들게 온 보람이 있었다. 바닷가에 우리 밖에 없었고 비수기라 방갈로들도 텅텅 비어 있다.  한가로움과 여유 그 자체다.페류구에Pelluhue를 들어오면서 아주 커다란 광고가 보였다. 승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지? 이번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자동차, 오토바이, 사이드카에 “말을 타고 여행하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도 나눈 적이 있는데 혹시 남미에서 기회가 되면 말로 한 구간 정도는 여행을 해보려고 이미  독일에서 승마까지 배웠던 터였다. 우리는 4일간 이곳에서 승마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독일에 비해 가르치는 방법이 아주 달랐다. 독일은 안전, 안전을 강조한다. 그리고 말을 애완용 동물처럼 귀하게 다루는데, 이곳에선 첫날부터 나 혼자 해변에서 말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둘째 날은 산으로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겁도 났다. 갑자기 말이 질주를 하면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보기에는 단순한 승마였지만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 나중에는 허벅지와 엉덩이 살이 벗겨질 정도였다.말을 타고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이 남미에 늘고 있다고 하는데 직접 말을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니 말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도 나중에는 돈키호테Don Quichote처럼 에릭은 백마를 타고 나는 조랑말Sancho Pansa을 타고 말이다. 글쎄 그것도 아니면 애마 부인처럼? ㅎㅎㅎ 꿈도 야무진가? 넷째 날 오전에는 말을 다루는 방법, 질주 등 이론과 실습을 오후에는 자유승마를 했더니 나중에 말과 헤어질 때는 며칠 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나인데 내가 이렇게 말에게 정이 들 줄이야.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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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라 말로 둔갑하다니



와인에 취하여 하늘을 향해

타이어, 세 번이나 펑크 나다
남미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다. 살사와 샴포냐를 배우는 일이다. 마침 페류구에의 방가로에는 마을 여자들이 와서 살사와 에어로빅을 배우고 있어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나는 우리나라의 국민 체조를 대신 가르쳐 주고 함께 살사 연습을 시작하려는데 내 허리 부분이 너무 굳어있단다. 남미사람들의 허리가 유연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춤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가도 항상 흥겨운 음악이 있고 춤이 있으니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 것이다. 방갈로 주인과는 며칠 동안 아주 정이 많이 들었다. 주인 여자가 성격도 밝고 부족한 것이 있는지 매일 물어보고 아주 친절했다.주인의 시누이가 되는 사람은 우리를 초대해 칠레의 해산물 카수엘라를 대접해주었고 함께 숯불갈비도 만들어 먹으며 처음으로 칠레 사람들이 가까이 지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펼쳐지고, 승마도 배우고 너무 편히 쉬어서 인지 다시 페달을 밟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날씨도 덥고 길도 콘스티투치온까지는 얼마나 경사가 많던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펑크가 세 번씩이나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마도 에릭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 모양인데 자전거를 비상도로에 세우고 뒤집어서 펑크 때우는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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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많은
해변가


노부부의 초대 받은 쿠리코에서
쿠리코에서는 페류구에에서 인사를 트게 된 노부부가 우리를 초대한 바 있어 전화를 했다더니 당장 찾아오라고 난리였다. 쿠리코에서는 20km 떨어져 있는 위치였다. 제니퍼Jennifer 아줌마는 학교 교장선생님, 하이메Jaime 아저씨는 67세이신데 자녀들은 장성해서 산디아고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두 분만 사시고 계셨다.  두 분 모두 여행을 좋아하시고 우리들 여행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에릭은 밤1시까지 컴퓨터로 우리의 여행을 설명해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제니퍼 아줌마는 그동안 우리가 고기만 너무 많이 먹었다고 생선 요리를 해주신다고  이것저것 준비하여 요리해주시고 세탁기가 있으니 우리 침낭이랑 빨래를 모두 다 세탁하라면서 우리들이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셨다. 아쉬운 점은 주택이  바로 고속도로 옆에 있어 소음 때문에 잠을 편안하게 잘 수가 없었던 점이다.  이틀 머물고 떠나려고 하니 한 1주일 정도 쉬다가 가라고 하며 막 붙잡는 바람에 어렵게 사양을 해야만 했다. “시간을 다투어 하는 여행도 아닌데 왜 그리 빨리 가려고 하느냐”면서 제니퍼 아줌마는 아들만 둘을 키워서 딸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내가 조잘조잘 떠드니까 좋으셨던 모양이다.사실 아줌마와 아저씨를 페류구에에서 만났을 때 두 분이 커다란 저택과 농장을 가지고 계시는 줄 알았다. 그리고 두 분이 사시는 곳이 와인농장 일대인터라 와인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건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사시는 두 분을 보며 행복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외모만 보고 판단했던 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곳을 떠나 달리는 경로 루타Ruta로부터는 포도밭도 아주 많고 칠레에 와인이 정말로 많이 생산되는 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입이 떡 벌어 질 정도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대한 포도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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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포도밭


독특한 풍광을 가진 도시 발파라이소
칠레의 도시들은 대부분 정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고 계획도시처럼 똑바로 정돈되어 있어 도시별로 독창적인 색채가 별로 없다. 다만 우리가 좋아 했던 점은 도시나 농촌을 불구하고 사람들이 대화하고 휴식할 수 있는 광장Plaza이 있다는 점이다.  광장에는 나무도 많고 더러는 분수도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그리고 광장에 가면 그 마을의 특성을 파악할 수도 있다.그런데 이건 이 도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을까?  집들이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고 무려 마흔 다섯 개의 언덕들이 있다고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아주 높은 언덕이 나타나고 또 다시 내려오면 완전히 낮은 도로가 되고 지금까지 다녀본 곳과 너무 색다른 광경이다. 바로 그 도시 발파라이소Valparaíso는 칠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자전거로 도착했을 때는 앞이 막막했다. 차량도 너무 많고 그리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철이 워낙 빨리 달려 사고 위험으로 겁도 난다. 게다가 날씨는 푹푹 찌고 있으며 길은 평지가 아니고 오르락내리락 정신이 없다. 경사가 심한 곳은 40도가 될 정도로 가팔라 잘못 접어들었다가는 한 달 사용할 체력을 몇 시간 만에 소모해 버릴 지도 몰랐다. 등성이에 사는 사람들은 아센소Acensor라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집 근처까지 가는데 가장 오래된 Acensor는 들어가는 입구가 아주 독특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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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개의 언덕, 아름다운 발파라이소


칠레의 마지막 도시 로스안데스
이틀 쉬면서 자전거 정비하고 안데스 산맥을 올라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한편으로 안데스 산맥을 또 올라 갈 수 있다는 환희,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이번에는 3189m 높이라는데 지난번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온 안데스 높이의 두 배는 되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에릭은 미리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이틀 동안 고기를 1킬로그램은 넘게 먹고 몸을 만들었는데 글쎄 정상 쪽에는
‘산소도 희박하다’고 하는데 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과연 잘 오를 수 있을까?  걱정, 두려움, 기대가 서로 교차한다.
Chi_045
안데스 산맥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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