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2
오르락 내리락
다들 입 다물엇!
이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자전거를 직접 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길에 대한 감각이 없다. 물어보는 사람이 잘못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우린 매번 한 지역을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다음 목적지의 숙박 상황과 길에 대한 사정을 묻곤 한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고 한편 위험 지역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지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하루에 3번 정도의 30도의 급경사를 자전거로 올랐다 내렸다 해 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안다. 그러니까 동해안의 정동진을 오르락 내리락 한 10번만 하면 정말로 아름다운 정동진이 보기 싫은 느낌이 들 것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남자들의 야유소리는 정말로 짜증난다. 야유가 격려가 될 수도 있겠지만 힘든 날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다들 입 다물어.”하고 돌멩이를 입에다가 물려주고 싶다. 내가 어쩌다 이리 성질이 나빠졌는지…
빅토리아Victoria에서 트아리귄트라이귄Traiguen까지는 자전거타기에 즐거운 구간이다. 길 양 쪽으로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피어 있고 가로수도 예쁘게 심어져 있어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스릴을 맛보면서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트아리귄에서 로스 사우세스Los Sauses까지는 죽을 맛이었다. 오르막을 올랐다 싶으면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 5번 정도 있었을까. 쉬고 싶어도 자전거를 기대어 놓을 데가 없어 발로 페달을 지탱하고는 잠깐 쉬고 또 끌고 가야만했다. 힘들다 그리고 지겹다.
쓰레기통과 장난을 치는 개
Villarica라는 곳에 스위스 자전거 부부가 자리를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에릭을 꼭 그 부부를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Claudia 와Beat는 1995년부터 97년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었고 Villarica 에 도착했을때 여행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스위스와 느낌이 비슷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는데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은 셈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딸 한명에 호스텔"Torre Suiza“ 주인으로 자전거 여행객이었던 느낌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었다. 이곳을 Villarica 화산이 관광지로 알려져 있어서 끊이지 않고 유럽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Villarica화산
타이어, 세 번이나 펑크 나다
날씨도 덥고 길도 콘스티투치온까지는 얼마나 경사가 많던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펑크가 세 번씩이나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마도 에릭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 모양인데 자전거를 비상도로에 세우고 뒤집어서 펑크 때우는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만 했다. 달려도 달려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 어디든 앉을 자리만 있으면 좋겠다 싶어 달리다 보니 고속도로의 표지판 밑이 보인다. 더운물 찬물 가릴때가 아니다 . 일단 요기부터 하자.
어디든 어떠랴. 요기만 할 수 있다면
아만사도 빵 아줌마
콘스티투치온에서 탈카로 가는 길은 정말로 좋지 않다. 도로사정도 안 좋은데다가 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 그리고 작열하는 더위… 한숨이 절로 나오고 온몸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우리의 목적지인 탈가로는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덥고 힘들어 도로에 식당이라도 나오면 구걸을 하는 상황이 있더라도 쉬어 가려고 작정을 했다.중간쯤 갔을까 식당이 보인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웨이터에게 숙박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방도 있단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물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오더니만 방이 다 찼단다. 글쎄, 우리 생각에는 충분히 방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를 거절 하나? 에릭이 주인을 찾아 나섰다. 주인여자의 동생이 처음에는 방이 있다며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말을 바꾸어 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방이 없다면 캠핑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주인인 언니랑 이야기를 해보란다. 여주인은 일단 체격이 너무 크니까 주눅이 들고 무뚝뚝한 얼굴이어서 말 붙이기가 참 어려웠다. 내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캠핑을 하자고 에릭을 설득 시킨 후 에릭이 말을 건넸다. 여주인은 한참을 망설이더니만 방이 있기는 호텔처럼 깨끗하지 않고 욕실도 공용이고 산에서 나무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가끔 썼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행객이고 관광객이 아니므로 너무 신경 쓰시지 말고 하룻밤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렇게 하겠다며 나중에 불평은 하지 말란다. 식당 뒤에는 아예 호스텔처럼 집이 한 채 있고 방도 많았다. 다 텅텅 비어있었고 다만 청소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우리는 빈대에 물릴까봐 약을 치고 침대를 점검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고 주인아줌마가 침대시트도 싹 빨아서 빳빳하게 다린 것을 준다. 그리고 샤워하고 정리되면 맛있는 저녁을 준비 할 테니 식당으로 오란다. 처음에는 무지 무섭게만 보였는데 사람은 역시 겪어보아야 안다. 꼭 동네 아줌마를 만난 그런 분위기를 주니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정원을 둘러보니 빵처럼 동그랗고 뚱뚱한 아줌마가 우리를 반가워하면서 빵을 만들고 있다며 구경하란다.
하루에 나무불로 빵을 200개 이상 굽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드는 빵의 이름은 ‘아만사도’이다. 저녁식사 때 우리는 금방 구워내 온 빵을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었다. 한 3개쯤 먹고 또 달라고 하니 빵을 주시지 않는다. “빵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아줌마처럼 빵보다도 더 뚱뚱해 진다”면서 조금만 먹으라며 익살이다.
자전거, 말로 변신하다
칠레에는 북에서 남으로 한 개의 도로(일명 Pan America)만 길게 뻗어 내려있어서 정말 불편하다. 비상도로를 편안하게 달린다는 장점은 있지만 칠레의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수많은 차량들이 매우 빨리 달리므로 칠레 자전거 여행자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팬 아메리카 도로가 싫다면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짐이 많은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일이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내 짐이 70킬로그램인데 경사가 많은 비포장도로는 자살행위와도 같다. 지도를 보니 해변에도 도로가 있고 포장도 되어있다고 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해변을 향해 달려갔다.역시 힘들게 온 보람이 있었다. 바닷가에 우리 밖에 없었고 비수기라 방갈로들도 텅텅 비어 있다. 한가로움과 여유 그 자체다.페류구에Pelluhue를 들어오면서 아주 커다란 광고가 보였다. 승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지? 이번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자동차, 오토바이, 사이드카에 “말을 타고 여행하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도 나눈 적이 있는데 혹시 남미에서 기회가 되면 말로 한 구간 정도는 여행을 해보려고 이미 독일에서 승마까지 배웠던 터였다. 우리는 4일간 이곳에서 승마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독일에 비해 가르치는 방법이 아주 달랐다. 독일은 안전, 안전을 강조한다. 그리고 말을 애완용 동물처럼 귀하게 다루는데, 이곳에선 첫날부터 나 혼자 해변에서 말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둘째 날은 산으로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겁도 났다. 갑자기 말이 질주를 하면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보기에는 단순한 승마였지만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 나중에는 허벅지와 엉덩이 살이 벗겨질 정도였다.말을 타고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이 남미에 늘고 있다고 하는데 직접 말을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니 말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도 나중에는 돈키호테Don Quichote처럼 에릭은 백마를 타고 나는 조랑말Sancho Pansa을 타고 말이다. 글쎄 그것도 아니면 애마 부인처럼? ㅎㅎㅎ 꿈도 야무진가? 넷째 날 오전에는 말을 다루는 방법, 질주 등 이론과 실습을 오후에는 자유승마를 했더니 나중에 말과 헤어질 때는 며칠 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나인데 내가 이렇게 말에게 정이 들 줄이야.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라 말로 둔갑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