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미스터 그링고
(Hello Mr. Gringo)
페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볼리비아와 페루 국경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볼리비아를 떠난다는 것은 아쉽지만 새롭게 시작될 페루에서의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페루가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나라에 꿈에도 그리면서 그렇게 보고 싶던 마추픽추Machu Picchu 와 그 밖의 많은 잉카유적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페루에 대한 선입견이 그리좋은 편은 아니었다. 여행자들로부터 페루사람들이 볼리비아 사람들보다 드세고 항상 장사속이 있는가 하면 비용은 더 비싼데다가 지저분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전거 타기에 무지 위험한 환경이라는 소리에 우리는 조금 얼어(?)있었다.우리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약간은 운이 따라 주는 것 같다. 입국심사장에서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미는데 입국검사원이 나보고 윙크를 슬쩍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이놈의 미모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빠지질 않네 그려! ^^;;) 못 본 척 웃으면서 여권을 주니 옆에서 검사 받는 에릭과 옷이 동일한 것을 눈치 채고는 남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페루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하면서 90일 도장을 찍어 준다. 똑같은 나라이지만 어떤 국경검문소에서는 30일짜리 비자를 찍어 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30일 비자를 받아두면 나중에 비자를 연장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경비와 시간이 추가로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우리는 당초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90일짜리 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순순히 90일짜리 비자를 찍어 주니 부탁할 일도 없다. 내가 당신이 윙크했으니까 180일짜리 비자를 찍어 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 왈 윙크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90일 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국경사무소에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페루 땅에 도착해 경관을 바라보니 일별하기에 볼리비아와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다. 티티카카호수를 끼고 있는 자연경관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우리는 국경에서 8시간 만에 티티카카호수의 도시 푸노에 도착했다.
푸노의 대성당과 광장
호수 위의 집, 우로스
티티카카 섬 생각나는 것은 물위에 떠있는 집들이다. 그런데 물위에 떠있는 집들은 우로스Uros 섬이라는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우로스는 푸노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분만 가면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배들은 아침 7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니 교통편이 수월한 편이다. 물위에 떠있는 집들을 보려고 아침부터 수 십대의 배들이 호수를 줄지어 달린다. 아! 정말 별세상에 온 것 같다. 집이 물위에 둥둥 떠 있고 그렇게 여러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중의 한 마을에 내렸는데 갈대로 만든 섬이기에 혹시나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갈대가 물속 깊숙이까지 든든히 받치고 있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이곳에는 모두 40여 개의 부락이 있는데 어떤 곳에는 학교도 있고 강당도 있고 수세식 화장실도 있다. 우리가 도착한 부락은 조그마하고 가난한 곳이었는데 4개의 집이 떠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부락의 아줌마들이 반가와 하며 빵을 튀겨 환영을 해주고 가이드는 섬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설명이 너무 지루해서 나는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찍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한 꼬마여자아이가 옷은 반 누더기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더니 날 위해서 지푸라기위에서 포즈를 잡는 것이었다. 약간은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보였지만 그 천진난만한 웃음과 순진함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나이가 한 3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말은 못하는 것 같은데 잠깐 이이를 돌보다보니 금방 서 너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점심으로 먹을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니 아이들은 좋아하며 떨어지질 않고 게다가 날 위해서서 춤까지 추어준다. 부락의 아낙네들은 손수 만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이들의 수공예품 판매는 가계에 큰 보탬이 되어준다. 하지만 아줌마 우리는 자전거 여행자라서 사 드리질 못하네요. 죄송해요!집안을 기웃거리면서 살펴보니 내 눈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침대도 없고 그냥 지푸라기에 누워서 자고 용변 등은 모두 그냥 호수에서 보는 모양이다. 청결과 위생이 문제가 될 듯싶다.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조금이라도 번 사람들은 푸노로 나가던가 아니면 섬 위에 양철로 된 집을 짓는다고는 하는데 고지대라 그리 덥지는 않겠지만 위생문제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큰 부락을 가니 학교도 있고 강당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전기가 없다. 만약에 밤에 촛농이라도 떨어져서 불이라도 붙으면 한꺼번에 홀랑 다 타버릴 텐데… 장마라도 들면 집이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될 테고…글쎄,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가 별걱정을 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부락을 지키는 이곳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신이다.
호수위의 집
뜨개질하는 남자가 사는 섬, 타길레
우로스 섬의 물 위에 뜬 집들과 여러 가지 모양의 배들을 보고 나면 티티카카호수를 3시간 동안 이동하게 가게 된다. 목적지는 티길레Taquile라는 섬. 이 섬의 부두 칠찬도Chilchando 에 도착하면 540개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게 되는데 티길레 섬은 고요 그 자체로 적막하기 이를데 없다. 이 섬에는 모두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산다고 하는데 다니는 차도 없고 경찰도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하기는 돌섬이다 보니 차가 다닐 수도 없겠다. 주민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섬의 광장에 모여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문제가 있는 주민이 발생하면 광장에서 6개 부락 연장자들로부터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잘잘못을 가려 죄에 속한다고 판단 될 때는 가죽으로 매를 맞는단다. 이를테면 사법기구인 셈이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오늘날까지 이런 전통이 이어져온다는 사실이 놀랍다. 토요일 날 섬에서 자게 되면 이 신기한 재판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다는데 관광객을 출입 시켜줄 지, 아닐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일요일 날 섬사람들이 미사를 보고 나오는 장면은 틀림없이 지켜 볼 수 있다고 한다. 티길레 섬에는 이 섬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우선 의상으로 미혼인지 기혼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꼬깔 모자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데 하얀 모자를 쓰면 미혼, 알록달록한 모자를 쓰면 기혼남성이다.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데 엷은 색 치마를 입으면 미혼, 짙은 색 치마를 입으면 기혼여성이다. 이밖에도 허리띠 등 여러 가지 의류와 장신구로 신분과 특색을 나타낸다고 한다.특이하고도 조용한 티길레 섬. 태양의 신에게서 선물 받은 섬. 이 섬의 남자들이 뜨개질을 하는 것도 이상한 모습이다. 이곳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섬세하게 뜨개질을 한다고 하는데 주로 흰색과 빨간색을 실로 뜨개질을 한단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 남자, 세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며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세계다.
타길레 섬의 여자
우르코스Uros 에서 쿠스코까지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달리기 어려운 길이다. 게다가 기후의 변동도 엄청 크다.우리에게 가장 높은 안데스 산 4300m 가 기다린다. 아침 5시30분에 기상하여 비가 오기 전에 잉카제국의 수도에 도착해야만 한다. 다행이도 경사가 아주 가파르지 않아서 목동과 이야기도 하고 야먀랑도 놀다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그 이후부터는 거의 내리막이라 신났다.
정상에 도착하다
놀랄 만큼 섬세한 쿠스코 잉카의 벽
쿠스코 근교 약 10킬로미터 까지 도착하니 (우리말표기,쿠이알오르노)Cuyal Horno(오븐에 구운 햄스터 고기)라고 이곳저곳에 쓰여 있고, 지름이 5센티미터나 되는 빵을 팔고 있다.점심식사로 햄스터 요리를 시키니 코스로 제공된다. 애피타이저로 옥수수 찐 것과 하얀 치즈, 스프가 나왔고 메인으로는 햄스터 요리가 나온다. 페루를 여행하면서 먹어보았던 어느 식당보다 깔끔하고 맛있다. 햄스터 요리는 머리와 다리가 달린 상태로 제공되는데 징그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는 웨이터에게 머리와 다리를 잘라서 요리해 달라고 하면 된다.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에릭이 남미에서는 햄스터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하길래 애완용동물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며 혐오스럽다고 했건만 사람심리가 참 이상한 것이 페루의 특산음식물이라고 하니 꼭 먹어보아야 할 것 같은 사명감까지 드는 것이었다. 햄스터 고기는 지방질이 거의 없고 100퍼센트 단백질로만 구성되어 있는 육류다. 나름대로 햄스터 요리로 영양보충을 하고 떠나는 쿠스코 가는 길은 마냥 험하기만 했다. 차량도 급격히 증가했고 속력을 내서 달리는 차량들도 많았다. 가장 위험하고 힘든 것은 조그마한 미니버스들이 인정사정없이 옆으로 지나가거나 앞에 서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니 오후에 또 한 차례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래 이럴 땐 그냥 달리는 수밖에 없다. 한 시간 정도 치열하게 페달을 밟고 나니 드디어 쿠스코 시내. 도로는 온통 돌덩이로 만들어져 있다. 잉카의 벽만 돌로 만들어진 줄 알았더니만 길도 모두 돌로 만들어졌구나. 좁은 길이 온통 돌바닥이다 보니 자전거에 진동이 많이 전해지고 그러다보니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뒤에서 차들은 빵빵대고 마음은 급해진다. 쿠스코는 관광지인터라 숙소나 식당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중앙 광장Plaza de Armas으로 나가니 대성당과 다른 성당들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이곳이 바로 잉카제국의 심장이요 세계의 배꼽Centro del mundo이라고 칭하던 곳이다. 아 그러니까 유럽의 중심은 로마, 아시아의 중심은 베이징, 남미의 중심은 쿠스코란 말이지? 시내를 구석구석 다니다보면 웅장하고 역사적인 건축물 뿐 아니라 전통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동냥을 하는 아이들, 구두닦이들 등등 볼거리가 너무 많다. 체게바라 영화에도 나왔던 잉카의 벽을 가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벽에 칼은 들어가지 않지만 바늘은 들어간다. 저녁에는 식당마다 삼포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악기들을 연주한다.
아름다운 연주 속에 쿠스코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쿠스코 광장
된장찌개를 먹고 힘과 용기를 얻다
볼리비아를 떠날 때부터 치아가 약간 아프기 시작했다. 쿠스코에서 다시 검진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치과에 가니 다행히 단지 예민한 현상이란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는 것인데 충치가 아니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에릭의 생일을 보내고 쿠스코를 떠날까? 아니면 생일을 맞기 전에 떠날까 망설이다 가 생일 기분 낸다고 먹은 음식과 와인에 탈이 있었는지 누워서 자려고 하는데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나니 오바이트를 다 하고 나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조금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온몸에 열이 생겨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침 6시가 되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에릭은 나에게 미련하단다. 자기가 아무리 곤히 자고 있더라도 깨워서 약을 먹어야하지 않았느냐고 나를 위로한다. 하긴 잠을 자지 못해 에릭을 깨울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눈을 조금 붙이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잘 자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느냐구요.)체온을 재보니 39도. 온몸은 뜨거웠고 머리는 아프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심하게 아프다는 소리에 간호사 일을 한다는 사람이 와서 보더니만 약을 3일간 먹고 쉬면 낳을 것 같단다. 감기기운에다가 음식에 문제가 있어 생긴 현상이란다.약을 먹고 30분쯤 지나니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도 못 먹고 바나나와 스프만 간신히 먹으면서 3일간이나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났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면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이 먹고 싶다고… 약 기운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갑자기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쿠스코에 도착한 첫째날 쿠스코의 중심부 (우리말 표기산 아구스틴)San Augustin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니 자랑스런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눈에 뜨였다. 한국 식당 아리랑. 이곳이 쿠스코 유일의 한국식당이다. 쿠스코에 한국 식당이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지만 사장님(남승학)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같은 고향 강릉 사람이라 더 반가웠다. 아리랑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힘을 얻었는데 떠날 때는 다시 된장찌개로 힘과 용기를 얻어 쿠스코에 온지 8일째 되던 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잉카의 제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세밀한 잉카의 12개면이 접목하는 벽
마추픽추로 가는 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쿠스코에서 편안하게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의 투어를 선택하는 방법, 잉카 트레일을 이용하거나 올란타이탐보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 또는 우리가 이용한 버스와 기찻길 등반, 그것도 아니면 다른 잉카 유적지를 등반하여 마추픽추에 이르는 8박 9일의 등반 등이다. 올란타이탐보에서 버스를 타고 싼타로사Santa Rosa 까지 가는 길은 끝없이 꼬불꼬불 올라간다. 커브가 너무 심해서 구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남미에서 버스 여행을 하자면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먹을 것을 파는 상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은 종류를 가지고 와서 판다는 것이다. 11월은 옥수수 철이 시작되는 이유로 따끈따끈하게 찐 옥수수를 파는 여자들이 옥수수와 치즈Cocurro con queso를 외쳐댄다. 강원도 출신이라 옥수수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나. 옥수수를 두개나 사서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버스가 정상에 오르더니 갑자기 멈춰 선다. 도로공사 중이라 30분을 기다려야 된단다. 30분? 글쎄, 남미에서는 30분은 1시간이 될 수도 있고 3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드물게는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올란타이탐보로 떠나는 날에도 보통 때는 매일 30분 간격으로 있다고 하던 버스가 선거 관계로 오전에는 아예 오지 않았고 오후 3시나 돼서야 나타났던 것이다. 다행히 버스는 오래 서있지 않고 바로 떠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가 모험의 시작이었다. 비포장도로에 안개가 자욱하고 건너편에서 오는 트럭과 버스는 무섭게 달려온다. 내가 탄 버스기사는 비포장인데도 과속으로 달려가니 버스가 벼랑 아래로 떨어질까봐 무섭기만 하다.
올란타이탐보에서 만났던 어떤 남자가 이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나 안전하게 다니기를 바랄 뿐이다. 우기에 접어든 날씨는 궂은비를 뿌리고 도로에는 진흙덩어리들이 달라붙고 곳곳에 산에서 흘러내린 돌덩이와 흙이 수북이 쌓여있다. 정말 길이 막히지 않고 차들이 통행할 수 있다는 것이 용하다 싶다.저녁 8시에 산타로사Santa Rosa에 도착하면 어쩌면 싼타 테레사로SantaTeresa가는미니버스가 끊겼을지도 모르니 퀼라밤바Quillabamba까지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도착하니 완전히 열대 기후다. 장장 8시간에 걸친 버스 여행을 마치니 온몸이 꼬여 들고 기온이 갑자기 더워져서인지 힘이 쭉쭉 빠진다.퀼라밤바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에 싼타 테레사Santa Teresa까지 가는 버스를 찾으니 12시까지는 버스 앞자리가 모두 꽉 찼단다. 별 수 없이 싼타로사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하여 그곳에서 싼타 테레사로 이동하기로 했다. 싼타테레사로 가는 길 역시 모두 비포장도로다. 산에서 낙석이 생겨 내려와 작업을 하는 구간에서 1시간 가량 기다려야만 했지만 시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 주렁주렁 매달린 망고를 바라보니 즐겁기만 하다. 싼타 테레사에는 아구아스 칼리엔테보다 더 좋은 온천이 있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하루 밤을 묵고 다음날 등반을 하기로 했다.센타 테레사의 온천은 천연 자연 온천으로 모두 3가지의 욕조가 있다. 관광객에게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조용하게 온천욕을 할 수 있어서 좋았건만 온천에서 나오니 모기들이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모기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 옷을 뚫고도 달려드는데 페루까지 와서 모기회식을 시켜줄 줄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구요.
Machu Picchu로 가는 길
마추픽추 광장에 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추픽추로 향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에서 버스로 20분이 소요되는데 가는 길부터 신비롭다. 꼬불꼬불 커브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하니 마치 평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 해발고도 2400미터에 자리 잡았다는 마추픽추다.마추픽추 광장에 서니 나도 모르게 감탄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추픽추! 바로 이곳이구나! 감탄사외엔 다른 어떤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꽉메어 오는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흔히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면 유적지를 배경으로 뒤에 높은 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와이나 픽추Huayna Picchu. 마추픽추에 입장을 하면 와이나 픽추를 등반할 수 있다. 다소 위험한 등반이라 하루 400명으로 입장인원이 제한되어있다. 우리는 아침에 빨리 올라가는 것이 잉카의 정기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서둘러 와이나 픽추로 올랐다. 등반하기 전 방명록 이름을 쓰게 되어 있는데 저런! 아쉽게도 몇 발자국 차이로 1등을 놓쳤다. 에릭은 2번이면 어떻고 3번이면 어더냐면서 한국인은 뭐든지 최고, 첫 번째이고 싶은 욕심이 크단다. 와이나 픽추는 가파른 경사에 돌계단이 많고 안전 장비가 준비되지 않아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와이나 픽추 정상에 오르니 마추픽추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뒤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나는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명상에 잠겼다. 우선 잉카인들에게 감사했다. 이런 유적지를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준 점에 대해서 말이다. 마추픽추는 직접 와서 보아도 신비스러운 곳이다. 미국의 탐험가 빙검에 의해 20세기 초 안데스 산에서 발견된 마추픽추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도시인가? 수도원인가? 아니면 스페인 원정군이 올 것에 대비했던 요새인가? 아직도 그 정체를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수도원이었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도 같다. 지금은 그냥 산정도시라고 부른다. 하루 종일 정상에 앉아서 마추픽추를 감상 하고 싶었지만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앉아서 마추픽추와 주변경관을 감상하다가 다시 마추픽추 광장으로 내려오니 벌써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하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남미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마추픽추라고 한다. 오후가 되니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진한 먹구름에 가려있는 마추픽추의 모습은 더욱 신비스럽다. 관광객들은 우비를 쓰고 유적지를 방문하고 사진을 찍고 탐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추픽추, 남미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에서도 가장 오래 머물고 싶고 기억에 남는 곳이다.
마추픽추
와이나픽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