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스터 그링고
(Hello Mr. Gringo)
“페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볼리비아와 페루 국경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볼리비아를 떠난다는 것은 아쉽지만 새롭게 시작될 페루에서의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페루가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나라에 꿈에도 그리면서 그렇게 보고 싶던 마추픽추Machu Picchu 와 그 밖의 많은 잉카유적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페루에 대한 선입견이 그리좋은 편은 아니었다. 여행자들로부터 페루사람들이 볼리비아 사람들보다 드세고 항상 장사속이 있는가 하면 비용은 더 비싼데다가 지저분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전거 타기에 무지 위험한 환경이라는 소리에 우리는 조금 얼어(?)있었다.우리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약간은 운이 따라 주는 것 같다. 입국심사장에서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미는데 입국검사원이 나보고 윙크를 슬쩍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이놈의 미모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빠지질 않네 그려! ^^;;) 못 본 척 웃으면서 여권을 주니 옆에서 검사 받는 에릭과 옷이 동일한 것을 눈치 채고는 남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페루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하면서 90일 도장을 찍어 준다. 똑같은 나라이지만 어떤 국경검문소에서는 30일짜리 비자를 찍어 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30일 비자를 받아두면 나중에 비자를 연장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경비와 시간이 추가로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우리는 당초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90일짜리 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순순히 90일짜리 비자를 찍어 주니 부탁할 일도 없다. 내가 “당신이 윙크했으니까 180일짜리 비자를 찍어 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 왈 “윙크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90일 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국경사무소에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페루 땅에 도착해 경관을 바라보니 일별하기에 볼리비아와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다. 티티카카호수를 끼고 있는 자연경관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우리는 국경에서 8시간 만에 티티카카호수의 도시 ‘푸노’에 도착했다.
호수 위의 집, 우로스
‘티티카카 섬’ 생각나는 것은 물위에 떠있는 집들이다. 그런데 물위에 떠있는 집들은 ‘우로스Uros 섬’이라는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우로스는 푸노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분만 가면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배들은 아침 7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니 교통편이 수월한 편이다. 물위에 떠있는 집들을 보려고 아침부터 수 십대의 배들이 호수를 줄지어 달린다. 아! 정말 별세상에 온 것 같다. 집이 물위에 둥둥 떠 있고 그렇게 여러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중의 한 마을에 내렸는데 갈대로 만든 섬이기에 “혹시나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갈대가 물속 깊숙이까지 든든히 받치고 있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이곳에는 모두 40여 개의 부락이 있는데 어떤 곳에는 학교도 있고 강당도 있고 수세식 화장실도 있다. 우리가 도착한 부락은 조그마하고 가난한 곳이었는데 4개의 집이 떠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부락의 아줌마들이 반가와 하며 빵을 튀겨 환영을 해주고 가이드는 섬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설명이 너무 지루해서 나는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찍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한 꼬마여자아이가 옷은 반 누더기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더니 날 위해서 지푸라기위에서 포즈를 잡는 것이었다. 약간은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보였지만 그 천진난만한 웃음과 순진함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나이가 한 3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말은 못하는 것 같은데 잠깐 이이를 돌보다보니 금방 서 너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점심으로 먹을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니 아이들은 좋아하며 떨어지질 않고 게다가 날 위해서서 춤까지 추어준다. 부락의 아낙네들은 손수 만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이들의 수공예품 판매는 가계에 큰 보탬이 되어준다. 하지만 아줌마 우리는 자전거 여행자라서 사 드리질 못하네요. 죄송해요!집안을 기웃거리면서 살펴보니 내 눈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침대도 없고 그냥 지푸라기에 누워서 자고 용변 등은 모두 그냥 호수에서 보는 모양이다. 청결과 위생이 문제가 될 듯싶다.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조금이라도 번 사람들은 푸노로 나가던가 아니면 섬 위에 양철로 된 집을 짓는다고는 하는데 고지대라 그리 덥지는 않겠지만 위생문제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큰 부락을 가니 학교도 있고 강당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전기가 없다. 만약에 밤에 촛농이라도 떨어져서 불이라도 붙으면 한꺼번에 홀랑 다 타버릴 텐데… 장마라도 들면 집이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될 테고…글쎄,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가 별걱정을 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부락을 지키는 이곳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신”이다.
뜨개질하는 남자가 사는 섬, 타길레
우로스 섬의 물 위에 뜬 집들과 여러 가지 모양의 배들을 보고 나면 티티카카호수를 3시간 동안 이동하게 가게 된다. 목적지는 티길레Taquile라는 섬. 이 섬의 부두 칠찬도Chilchando 에 도착하면 540개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게 되는데 티길레 섬은 고요 그 자체로 적막하기 이를데 없다. 이 섬에는 모두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산다고 하는데 다니는 차도 없고 경찰도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하기는 돌섬이다 보니 차가 다닐 수도 없겠다. 주민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섬의 광장에 모여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문제가 있는 주민이 발생하면 광장에서 6개 부락 연장자들로부터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잘잘못을 가려 죄에 속한다고 판단 될 때는 가죽으로 매를 맞는단다. 이를테면 사법기구인 셈이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오늘날까지 이런 전통이 이어져온다는 사실이 놀랍다. 토요일 날 섬에서 자게 되면 이 신기한 재판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다는데 관광객을 출입 시켜줄 지, 아닐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일요일 날 섬사람들이 미사를 보고 나오는 장면은 틀림없이 지켜 볼 수 있다고 한다. 티길레 섬에는 이 섬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우선 의상으로 미혼인지 기혼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꼬깔 모자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데 하얀 모자를 쓰면 미혼, 알록달록한 모자를 쓰면 기혼남성이다.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데 엷은 색 치마를 입으면 미혼, 짙은 색 치마를 입으면 기혼여성이다. 이밖에도 허리띠 등 여러 가지 의류와 장신구로 신분과 특색을 나타낸다고 한다.특이하고도 조용한 티길레 섬. 태양의 신에게서 선물 받은 섬. 이 섬의 남자들이 뜨개질을 하는 것도 이상한 모습이다. 이곳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섬세하게 뜨개질을 한다고 하는데 주로 흰색과 빨간색을 실로 뜨개질을 한단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 남자, 세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며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세계다.
타길레 섬의 여자
우르코스Uros 에서 쿠스코까지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달리기 어려운 길이다. 게다가 기후의 변동도 엄청 크다.우리에게 가장 높은 안데스 산 4300m 가 기다린다. 아침 5시30분에 기상하여 비가 오기 전에 잉카제국의 수도에 도착해야만 한다. 다행이도 경사가 아주 가파르지 않아서 목동과 이야기도 하고 야먀랑도 놀다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그 이후부터는 거의 내리막이라 신났다.
정상에 도착하다
놀랄 만큼 섬세한 쿠스코 잉카의 벽
쿠스코 근교 약 10킬로미터 까지 도착하니 (우리말표기,쿠이알오르노)Cuyal Horno(오븐에 구운 햄스터 고기)라고 이곳저곳에 쓰여 있고, 지름이 5센티미터나 되는 빵을 팔고 있다.점심식사로 햄스터 요리를 시키니 코스로 제공된다. 애피타이저로 옥수수 찐 것과 하얀 치즈, 스프가 나왔고 메인으로는 햄스터 요리가 나온다. 페루를 여행하면서 먹어보았던 어느 식당보다 깔끔하고 맛있다. 햄스터 요리는 머리와 다리가 달린 상태로 제공되는데 징그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는 웨이터에게 머리와 다리를 잘라서 요리해 달라고 하면 된다.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에릭이 남미에서는 햄스터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하길래 “ 애완용동물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며 혐오스럽다고 했건만 사람심리가 참 이상한 것이 페루의 특산음식물이라고 하니 꼭 먹어보아야 할 것 같은 사명감까지 드는 것이었다. 햄스터 고기는 지방질이 거의 없고 100퍼센트 단백질로만 구성되어 있는 육류다. 나름대로 햄스터 요리로 영양보충을 하고 떠나는 쿠스코 가는 길은 마냥 험하기만 했다. 차량도 급격히 증가했고 속력을 내서 달리는 차량들도 많았다. 가장 위험하고 힘든 것은 조그마한 미니버스들이 인정사정없이 옆으로 지나가거나 앞에 서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니 오후에 또 한 차례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래 이럴 땐 그냥 달리는 수밖에 없다. 한 시간 정도 치열하게 페달을 밟고 나니 드디어 쿠스코 시내. 도로는 온통 돌덩이로 만들어져 있다. 잉카의 벽만 돌로 만들어진 줄 알았더니만 길도 모두 돌로 만들어졌구나. 좁은 길이 온통 돌바닥이다 보니 자전거에 진동이 많이 전해지고 그러다보니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뒤에서 차들은 빵빵대고 마음은 급해진다. 쿠스코는 관광지인터라 숙소나 식당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중앙 광장Plaza de Armas으로 나가니 대성당과 다른 성당들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이곳이 바로 잉카제국의 심장이요 세계의 배꼽Centro del mundo이라고 칭하던 곳이다. 아 그러니까 유럽의 중심은 로마, 아시아의 중심은 베이징, 남미의 중심은 쿠스코란 말이지? 시내를 구석구석 다니다보면 웅장하고 역사적인 건축물 뿐 아니라 전통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동냥을 하는 아이들, 구두닦이들 등등 볼거리가 너무 많다. 체게바라 영화에도 나왔던 ‘잉카의 벽’을 가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벽에 칼은 들어가지 않지만 바늘은 들어간다. 저녁에는 식당마다 삼포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악기들을 연주한다.
아름다운 연주 속에 쿠스코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쿠스코 광장
된장찌개를 먹고 힘과 용기를 얻다
볼리비아를 떠날 때부터 치아가 약간 아프기 시작했다. 쿠스코에서 다시 검진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치과에 가니 다행히 ‘단지 예민한 현상’이란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는 것인데 충치가 아니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에릭의 생일을 보내고 쿠스코를 떠날까? 아니면 생일을 맞기 전에 떠날까 망설이다 가 생일 기분 낸다고 먹은 음식과 와인에 탈이 있었는지 누워서 자려고 하는데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나니 오바이트를 다 하고 나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조금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온몸에 열이 생겨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침 6시가 되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에릭은 나에게 미련하단다. 자기가 아무리 곤히 자고 있더라도 깨워서 약을 먹어야하지 않았느냐고 나를 위로한다. 하긴 잠을 자지 못해 에릭을 깨울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눈을 조금 붙이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잘 자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느냐구요.)체온을 재보니 39도. 온몸은 뜨거웠고 머리는 아프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심하게 아프다는 소리에 간호사 일을 한다는 사람이 와서 보더니만 약을 3일간 먹고 쉬면 낳을 것 같단다. 감기기운에다가 음식에 문제가 있어 생긴 현상이란다.약을 먹고 30분쯤 지나니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도 못 먹고 바나나와 스프만 간신히 먹으면서 3일간이나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났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면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이 먹고 싶다고… 약 기운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갑자기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쿠스코에 도착한 첫째날 쿠스코의 중심부 (우리말 표기산 아구스틴)San Augustin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니 자랑스런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눈에 뜨였다. 한국 식당 ‘아리랑’. 이곳이 쿠스코 유일의 한국식당이다. 쿠스코에 한국 식당이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지만 사장님(남승학)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같은 고향 강릉 사람이라 더 반가웠다. 아리랑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나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힘을 얻었는데 떠날 때는 다시 된장찌개로 힘과 용기를 얻어 쿠스코에 온지 8일째 되던 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잉카의 제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쿠스코에서 편안하게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의 투어를 선택하는 방법, 잉카 트레일을 이용하거나 올란타이탐보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 또는 우리가 이용한 버스와 기찻길 등반, 그것도 아니면 다른 잉카 유적지를 등반하여 마추픽추에 이르는 8박 9일의 등반 등이다. 올란타이탐보에서 버스를 타고 싼타로사Santa Rosa 까지 가는 길은 끝없이 꼬불꼬불 올라간다. 커브가 너무 심해서 구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남미에서 버스 여행을 하자면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먹을 것을 파는 상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은 종류를 가지고 와서 판다는 것이다. 11월은 옥수수 철이 시작되는 이유로 따끈따끈하게 찐 옥수수를 파는 여자들이 ‘옥수수와 치즈Cocurro con queso’를 외쳐댄다. 강원도 출신이라 옥수수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나. 옥수수를 두개나 사서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버스가 정상에 오르더니 갑자기 멈춰 선다. 도로공사 중이라 30분을 기다려야 된단다. 30분? 글쎄, 남미에서는 30분은 1시간이 될 수도 있고 3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드물게는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올란타이탐보로 떠나는 날에도 보통 때는 매일 30분 간격으로 있다고 하던 버스가 선거 관계로 오전에는 아예 오지 않았고 오후 3시나 돼서야 나타났던 것이다. 다행히 버스는 오래 서있지 않고 바로 떠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가 모험의 시작이었다. 비포장도로에 안개가 자욱하고 건너편에서 오는 트럭과 버스는 무섭게 달려온다. 내가 탄 버스기사는 비포장인데도 과속으로 달려가니 버스가 벼랑 아래로 떨어질까봐 무섭기만 하다.
올란타이탐보에서 만났던 어떤 남자가 이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나 안전하게 다니기를 바랄 뿐이다. 우기에 접어든 날씨는 궂은비를 뿌리고 도로에는 진흙덩어리들이 달라붙고 곳곳에 산에서 흘러내린 돌덩이와 흙이 수북이 쌓여있다. 정말 길이 막히지 않고 차들이 통행할 수 있다는 것이 용하다 싶다.저녁 8시에 산타로사Santa Rosa에 도착하면 어쩌면 싼타 테레사로SantaTeresa가는미니버스가 끊겼을지도 모르니 퀼라밤바Quillabamba까지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도착하니 완전히 열대 기후다. 장장 8시간에 걸친 버스 여행을 마치니 온몸이 꼬여 들고 기온이 갑자기 더워져서인지 힘이 쭉쭉 빠진다.퀼라밤바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에 싼타 테레사Santa Teresa까지 가는 버스를 찾으니 12시까지는 버스 앞자리가 모두 꽉 찼단다. 별 수 없이 싼타로사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하여 그곳에서 싼타 테레사로 이동하기로 했다. 싼타테레사로 가는 길 역시 모두 비포장도로다. 산에서 낙석이 생겨 내려와 작업을 하는 구간에서 1시간 가량 기다려야만 했지만 시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 주렁주렁 매달린 망고를 바라보니 즐겁기만 하다. 싼타 테레사에는 아구아스 칼리엔테보다 더 좋은 온천이 있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하루 밤을 묵고 다음날 등반을 하기로 했다.센타 테레사의 온천은 천연 자연 온천으로 모두 3가지의 욕조가 있다. 관광객에게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조용하게 온천욕을 할 수 있어서 좋았건만 온천에서 나오니 모기들이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모기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 옷을 뚫고도 달려드는데 페루까지 와서 모기회식을 시켜줄 줄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구요.
Machu Picchu로 가는 길
마추픽추 광장에 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추픽추로 향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에서 버스로 20분이 소요되는데 가는 길부터 신비롭다. 꼬불꼬불 커브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하니 마치 평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 해발고도 2400미터에 자리 잡았다는 마추픽추다.마추픽추 광장에 서니 나도 모르게 감탄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추픽추! 바로 이곳이구나! 감탄사외엔 다른 어떤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꽉메어 오는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흔히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면 유적지를 배경으로 뒤에 높은 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와이나 픽추Huayna Picchu’. 마추픽추에 입장을 하면 와이나 픽추를 등반할 수 있다. 다소 위험한 등반이라 하루 400명으로 입장인원이 제한되어있다. 우리는 아침에 빨리 올라가는 것이 잉카의 정기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서둘러 와이나 픽추로 올랐다. 등반하기 전 방명록 이름을 쓰게 되어 있는데 저런! 아쉽게도 몇 발자국 차이로 1등을 놓쳤다. 에릭은 “2번이면 어떻고 3번이면 어더냐”면서 한국인은 뭐든지 최고, 첫 번째이고 싶은 욕심이 크단다. 와이나 픽추는 가파른 경사에 돌계단이 많고 안전 장비가 준비되지 않아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와이나 픽추 정상에 오르니 마추픽추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뒤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나는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명상에 잠겼다. 우선 잉카인들에게 감사했다. 이런 유적지를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준 점에 대해서 말이다. 마추픽추는 직접 와서 보아도 신비스러운 곳이다. 미국의 탐험가 ‘빙검’에 의해 20세기 초 안데스 산에서 발견된 마추픽추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도시인가? 수도원인가? 아니면 스페인 원정군이 올 것에 대비했던 요새인가? 아직도 그 정체를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수도원이었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도 같다. 지금은 그냥 ‘산정도시’라고 부른다. 하루 종일 정상에 앉아서 마추픽추를 감상 하고 싶었지만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앉아서 마추픽추와 주변경관을 감상하다가 다시 마추픽추 광장으로 내려오니 벌써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하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남미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바로 마추픽추라고 한다. 오후가 되니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진한 먹구름에 가려있는 마추픽추의 모습은 더욱 신비스럽다. 관광객들은 우비를 쓰고 유적지를 방문하고 사진을 찍고 탐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추픽추, 남미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에서도 가장 오래 머물고 싶고 기억에 남는 곳이다.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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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만나요
잉카 잎차 ‘무냐’, 나를 살리다
와이나픽추 등반이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아니면 쿠스코에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타서 그랬는지 마추픽추를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오한이 시작 되었다.쿠스코에서 몸이 아팠던 것보다는 심하지 않았지만 3일간 항생제를 먹고 페니실린까지 복용을 했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지겹더라도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 올란타야탐보는 흥미로운 곳이고 마추피츄마추픽추처럼 신비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아프기 시작한 지 4일째인데도 증상에 별 변화가 없어 갑자기 걱정스러웠다. 조그마한 곳이지만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알레르기 증상과 감기가 혼합되어 있으니 약초가 많고 봄에는 특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는 올란타야탐보를 떠나는 것이 좋겠단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떠나는 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몸에 힘이 쭉 빠져 누우려고 하니 호스텔 주인 아줌마 노에미씨가 날 부른다.
“Senorita, usted tiene Fiebre?”
열이 있냐고 묻는 소리다. 나의 증상을 이야기 하니 ‘무냐Muña’라는 잎차를 끓여 줄 테니 한번 마셔 보란다. 잉카인들이 마셨던 차라고 한다. 향이 은은하고 좋았다.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잤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몸도 거뜬하고 머리도 아프지 않고 정말 명약이 따로 없다 싶었다.노에미 아줌마는 차만 끓여 주는 것이 아니라 손수 음식까지 만들어서 주었다. 내가 아플 때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그런 간호를 받았다. 나는 8일간이나 병치레를 하면서 노에미 아줌마와 딸 밀라와 무척 친해졌다.올란타야탐보를 떠나는 날, 나와 노에미 아줌마는 서로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눈물을 닦다가 그러다가 또 웃다가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지구의 저쪽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이 이곳 페루하고도 올란타야탐보에 사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8일간 서로 마음을 나누다가 이렇게 울면서 이별을 슬퍼한다.
“노에미 아줌마 우리 다시 만나요. 밀라야 안녕!”
호스탈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마추픽추보다 오래되고 큰 잉카 유적지 초케키라우
가장 오래된 잉카유적지가 있단다. 마추픽추보다 규모도 크고 오래된 곳인데도 아직까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구라와시의 숙소에 짐을 두고 그 잉카 유적지를 4박 5일간 트레킹 하기로 했다. 짐은 당나귀에 싣고 말을 타고 떠나는 4박 5일이니 기대도 많이 된다. 차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없고 별 보며 달 보면서 그리고 물도 없어서 강물을 이용하여 세수를 하고 화장실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단다.우리는 당초 당나귀만 빌려서 둘이 4박 5일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당나귀에 짐을 싣는 것을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잘 길들여진 당나귀이지만 짐을 올리고 또 싣는 것이 쉬운 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나귀의 눈을 가리고 짐을 올린 후 꽉 묶어서 고정을 시키는데 우리 둘이서 당나귀만 빌려서 출발했다간 하루 종일 당나귀 등에 짐 싣느라 하루를 보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당나귀와 투어를 시작하다
우리의 첫날 등반 거리는 약 20킬로미터. 약초 냄새를 맡으면서 걸어가는 길의 느낌이 나쁘지 않다. 차가 한대도 다닐 수 없는 길이라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사람들도 한 명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나와 에릭, 당나귀, 그리고 가이드뿐이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 싶었건만 간혹 집이 한두 채 보이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이 200명 이상은 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고민은 교통수단이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말과 당나귀뿐인데 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튿날 6시에 기상. 더 자고 싶어도 닭과 새들이 울어대고 늦게 떠나면 더위에 등반길이 힘들기에 7시에 준비를 마치니 벌써 해가 쨍쨍 내리 쬔다. 로사린다Rosalinda에 도착하여 아이푸막강을 건너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짐 하나 없이 카메라 가방 만 하나 달랑 들고 가는 것도 힘든데 어떤 외국인 관광객은 배낭을 짊어 매고 산길을 올라가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싶다. 한 두 시간을 걸으니 사탕수수로 만든 시원한 치차를 마실 수 있다.나는 스스로 등산에 숙달이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이곳 등산로는 워낙 가팔라서 평소보다 힘이 두세 배 더 든다. 발가락이 아파오니 경치구경은 고사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해발 3000미터 높이를 등반했고 그곳에서 산속에 꼭꼭 숨은 목적지 초케키라우 유적지가 보인다.멀리서 바라보니 한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것 같은데 아니란다. 앞으로 3시간은 더 가야하고 다음날 아침은 되어야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캠핑장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보름달이 둥실 떠오를 때 잉카 유적지를 보고 기도를 올리니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드리니 환상이다.
초케키라우에서 잉카의 정기를 잔뜩 받고 돌아와서 보니 엄지와 새끼발가락에 감각이 없는데다가 새끼발가락에는 피멍이 맺혔다. 에릭은 종아리 근육에 무리가 가서 이틀 동안이나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호스탈의 페루 사람이 놀린다. 왜 돈 주고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글쎄요? 고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리들은 즐거운 고생을 사서 한답니다.”
신비스러운 초케키라우의 잉카 광장
흙과 돌을 던지는 아이들, 성기를 자랑하는 아저씨
이번 여행을 통틀어 자전거를 타고 가장 높은 고도를 올라야 하고 또 내려가야 하는 날이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과연 하루에 해발 1300미터를 올라갔다가 1200미터를 내리막으로 달릴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다행히 구라와시 등반으로 몸은 더 강해졌고 정신적으로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구라와시를 벗어나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된다. 사이위테Saywite까지 길은 꼬불꼬불 계속 이어지며 오르막이 계속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는데 여자아이 두 명이 “무슨 일이야? Qué pasá?” 아주 극성스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나 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자전거를 세우란다. 조그마한 시골아이들이 순진한 맛이 하나도 없고 마치 강도 같은 행세를 하니 우습기도 했다. 아이들의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안녕?Chau”이라고만 해주었다. 대부분 시골 아이들은 자전거를 막 따라오면서 트레일러에 매달리거나 태극기를 때려고 하거나 아니면 돈이나 뭘 달라고 하는데 이럴 때는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일흔 한 살에 자전거 남미 종주 하는 게리 할아버지
페루에서는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종종 자전거 여행객을 만나 함께 달리기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는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짐을 주렁주렁 단 자전거를 탄 사람이 식당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급히 달려가서 아는 척을 하니 자신은 미국에서 왔으며 엘살바도르에서 출발하여 6개월간 여행 중이고 최남단 우수아이어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란다.처음 볼 때부터 아저씨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긴 했지만 대화를 하면서 나는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아저씨의 올해 나이가 자그마치 일흔 한 살이란다. 아저씨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세 명이었는데 다른 두 사람은 게리 아저씨보다 젊고 템포가 빨라서 도저히 맞추기가 힘들어 이제는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아저씨는 놀랍게도 가이드북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그냥 지도 보고 느낌으로 달리신다고 하면서 앞으로 일흔 세 살이 될 때까지 여행을 하신단다. 아저씨는, 아니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는 거의 한마디도 못하고 그동안 몸짓 발짓, 바디 랭귀지로만 돌아다니셨다는데 참 그 용기가 대단하시다.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할아버지가 방문하신다고 하여 에릭은 오후 내내 이것저것 자세히 정보를 알려주느라고 정신이 없다. 여자들이 만나면 수다를 오래 떤다고 했는데 그날은 할아버지와 에릭이 대단한 수다를 떤다. 거의 네 시간에 걸쳐서 지도 를 보면서 서로 이야기 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관심사가 같으면 정말 나이와는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할아버지는 에릭에게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일에 행복해 해야 한다며 강조하셔서 나는 할아버지가 더욱 고마웠다. 할아버지는 다른 여행도 좋아하지만 등산은 무릎이 아파 할 수가 없고 젊었을 때부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자전거로 남미 대륙을 달려 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영어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혹시나 할아버지가 아프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지만 할아버지는 페달을 돌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꼭 우리 아빠가 지금 혼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분이 들어 더욱 걱정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는 가슴이 찡했다. “할아버지! 언제나 건강하게, 재미있고 오랫동안 추억에 남는 여행되세요!”
72 살의 게리 할아버지, 알라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그의 꿈을 향하여
피라미드에 비유될 만큼 신비한 나스카Nazca 선
외계인이 그려놓은 듯 신비한 나스카 선을 보려면 오전 8시 전후 또는 오후 3시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한다. 경비행기를 타면 멀미가 심하다고 하여 일부러 아침도 거르고 물 한잔 밖에 마시지 않았다. 혹시나 구취가 날지 몰라 사탕도 하나 입에 물었다. 전날 예약을 할 때는 분명히 3명이 타는 조그마한 경비행기라더니 5명이 타야 된단다. 약간 싫은 표정을 하니 친절하게도 어제 예약을 받은 여자가 눈짓을 하면서 3명이 타는 비행기를 마련해 줄 테니 기다리란다. 한 20분 걸리니까 한명이 더 오게 돼서 모두 세 명이 경비행기에 올랐다. 나스카 선은 아직도 신비의 선으로 알려져 있고 여러 가지 문양을 하늘에서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파울 코속)Paul Kosok라는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씨가 50년을 넘게 연구하였다. 나스카 문명은 잉카문명 이전인 기원전 300년에서 서기 700년경에 이루어진 문명으로 추측된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 5분 정도 되니 고래모양이 보였다. 꼭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다. 모래 위에 아주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처럼 말이다. 트라이앵글, 원숭이, 천문학자, 독수리, 개, 손, 나무 등 모두 열두 가지의 문양이 사막의 모래 위에 펼쳐져 있다. 정말 신기할 뿐이다.
조종사가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사진을 촬영하라고 기체를 움직여 주었다. 처음 네 가지 문양은 신기하기도 해서 정신을 집중해서 감탄사를 터뜨리며 지켜보았건만 그 다음부터는 속이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려서 나는 아침에 마셨던 물까지 토해내야만 했다. 토하면서 보니 입에 물었던 사탕이 파란색이라 ‘파란 사탕물’ 이 나온다. 정신없이 토하면서도 나는 45분간의 비행을 최대한 즐겨보려고 노력했다. 온몸에 땀이 흐르면서 기진맥진하면서도 구토용 봉투를 입에 물고 신비의 나스카 선을 모두 지켜보았다. 바람과 같은 기후변화로 그 모습이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 그대로라고 하니 마냥 신비할 뿐이다. 신비의 나스카 선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견될 만큼 신비한 장소다.
신비의 나스카 선,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나스카의 신비스러운 새의 문양
홈볼트 펭귄이 사는 이슬라 발레스타 섬
파라카스Paracas에서 배를 30분 타고 가면 이슬라 발레스타Islas Ballestas를 방문할 수 있다. 자연국립공원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태평양과 물개나 새 등을 본다는 기쁨 보다 ‘홈볼트 펭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이게 한다. 카메라에 펭귄을 아주 예쁘게 담아야지 마음먹고 사진 찍기 좋은 배 앞에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말고도 약 30명을 태운 배는 점점 더 스피드를 내며 이슬라 발레스타로 우리를 안내한다.아치형의 모습들, 예수님,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자연암석들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들이 많다. 온 섬이 까맣게 보이는데 검은 것은 전부 새들이다. 펠리칸, 갈매기, 잉카새, 주둥이가 빨간 새 등등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너무 많다.그리고 냄새가 나는 물개도 많다. 물개수컷을 페루에서는 마초물개라고 칭하는데 가끔 하품을 하면서 관광객에게 방문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한다. 그동안 물개와 새들은 그럭저럭 많이 보아서 펭귄과 고래를 볼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예전에는 이곳에 펭귄이 많았는데 지금은 에쿠아도르 쪽으로 많이 이동해갔다고 한다. 펭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우려도 되었지만 곧이어 가이드가 “홈볼트 펭귄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두 마리의 펭귄커플이 서로 등을 긁어 주는지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펭귄들도 몇 마리 눈에 뜨인다. 처음에는 펭귄이 너무 작아서 새의 일종인줄 알았는데 홈볼트 펭귄은 아주 작고 귀여운 펭귄이었다.
남극처럼 펭귄이 많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많은 펭귄이 보이지는 않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에 있는 물개와 새를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도 물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지. 물개는 추운 곳이나 더운 곳이나 지독한 냄새는 여전하다. 가이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암석에 앉아 있는 물개를 이렇게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섬뿐이라고. 나는 혼자 피익 웃었다. 칠레의 발디비아와 가그밖의 여러 곳에 가면 항구에 널린 것이 물개인데… 하긴 섬에 사는 물개들이 항구에서 사는 물개보다 우아해(?) 보이는 것이 차이점이긴 하다.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드디어 투어가 끝났다. 이제 배는 속력을 내서 파라카스로 되돌아간다고 하는데 혹시 운이 좋으면 고래를 볼 수도 있단다. 나는 물개 냄새로 인한 멀미를 바다바람으로 달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 오르락 내리락 꼬리 같은 것이 보인다. 저게 뭘까?고래다. 고래 가족인지 모두 4마리 정도가 보인다. 우리를 태운 배는 시동을 끄고 조용히 고래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가이드가 다들 조용히 고래를 보라고 한다. 고래의 우아한 움직임, 빠르고도 유연하다.신비한 문양도 보고 펭귄과 고래도 보고… 만족하며 파라카스의 항구에 도착하니 우리가 다시 돌아와서 반가운지 펠리칸들이 소리 지르며 우리를 환영한다.
슬픈 자전거
독일과 한국을 7개월 동안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자전거 운송 문제와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독일에 두고 온, 지난 번 여행 때 사용했던 자전거를 가지고 한국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 때 사용했던 자전거는 페루에 두고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자전거를 보관할 곳? 일단 안전한 곳을 물색해야만 했다. 신부님이 계시는 곳에 둘 까? 아니면 호텔? 한인회? 대사관? 여러 군데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는 예전 직장인 KOTRA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에 계시는 김평희 팀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김팀장님은 내가 코트라에서 근무할 때 상사분이셨다. 김팀장님은 우리가 리마에 도착하기 전에 리마 무역관 김종경 관장님께 이 메일을 드렸고 우리가 전화를 하니 김 관장님께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테니 걱정말고 자전거를 무역관으로 가져 오라고 하신다.어느 나라에 가던 우리나라 기업체가 나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었던 회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꼭 오래된 친구나 친정 식구를 만나는 그런 기분이다. 무역관은 페루 시내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적지 않은 바이어들이 무역관을 방문해 안내자료를 받고 있었다. 무역관 창고는 자전거를 조립하지 않고 들여놓기에 조금 좁은 장소이긴 했지만 우리는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이곳에서 보관하기가 어려우면 아무래도 호텔에 보관하기가 쉬울텐데 6개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자전거를 창고에 두고 나오면서 괜히 마음이 찡하고 묘한 기분에 빠졌다. 매일 나의 분신처럼 함께 다녔는데 저렇게 창고에 둬야 되니 말이다. 괜히 눈시울이 뜨겁고 슬퍼졌다. 항상 멋지게 보이던 자전거가 갑자기 왜 그리 초라하게만 보이던지. 자전거가 나를 보면서 “나도 데려가 줘!”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자전거야, 자전거야 사랑스런 나의 자전거야! 6개월만 기다려 주렴. 그러면 우리 다시 만나 멋진 여행을 떠나는 거야. 안녕 내 빨간 자전거야.”
리마KOTRA 직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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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이 힘들군요.
7월24일 페루 리마에 도착.
6개월 전에 내가 머물렀던 리마의 모습은 어디론 가 사라지고 뿌연 하늘과 뼈가 시린 추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앞날이 깜깜하고 우울증에 7일간 걸려 여행에 대한 회의와 갈등.
결론은 날씨가 좋은 북쪽으로 달아나자!
북쪽 후아라스에 도착 3190m . 눈 덮인 산과 해. 천혜의 환경이다. 그런데 숨이 헉헉거리는 고산병.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역시 고산증세에는 쉬는 것과 코카 잎차가 최고다. (4일간 환경적응)
시작이 힘들다고 별 짓을 다하는 구만.
안데스에 적응투어
고산병에 적응하면서 4일간 투어를 하자는 에릭의 의견에 따른 내가 잘못인가?
후아라스에서 치키안까지(Huaraz-Recuay-Catac-Chiquian)
자전거에 6개월 만에 앉으니 살 것 같다. 에이 구 내 팔자야. 정말로 좋다.
눈덮힌 산과 자연. 나의 마음을 안정케해준다.
너무 빠른 환희였나 보다. 3일째는 맞바람. 극기 훈련이다.
그래, 극기 훈련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너무 심하다.
자전거에 균형이 깨지고 얼굴이 따갑고 힘들기만 하다.
투어 변경 하여 다시 후아라스로 돌아옴. (에릭이 정한 투어는 비포장을 하루에 1500m. 분명히 후아라스에서 정보를 얻었을 때는 아스팔트라고 했었는데 누구 말을 맏어야하나? 지도상에는 아스팔트가 아니었다. 지도를 믿자.)
후아라스 근처의 온천Monterrey 방문과 Chavin 유네스코 유적지 방문
오이칼립투스가 향이 나고 신경통과 근육통에 좋다고 하는 Monterrey 온천.
온갖 피로가 싸악풀린다. 가족실이 있어서 남 신경 쓰지 않고 푸욱 휴식.
이게 여행이다.
유네스코 유적지 Chavin 문화.그 많은 돌이 어디서 났을까? 곡식 저장 지며 돌로 만든 방 등등 신기하고 의아할 뿐.
드디어 투어 출발.....
후아라스에서 카라스까지 72km , 내리막이 많아 힘들지는 않았지만 미니버스 및 술 취한 운전자들이 많아 긴장. 도로에는 검사가 없다. 택시 운전자 둘이서 점심을 먹으면서 8병이나 되는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정신이 더 빠짝든다.
호수 Paron 등반. 와!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아름답다. 아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호수와 환상적인 눈덮힌 산 6025m Arteaonraju .
이런 곳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다.
아름답고 행복하다
난 도저히 더 이상 못해, 하지만 나는 오기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란 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12km 비포장의 35개 터널
두서너 개 터널만 길고 모든 터널이 짧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건만
완전히 예기치 못한 일이다..
다른 자전거 여행객에게 정말로 권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협곡 „Canon del Pato“는 스릴이 넘치고 손상되지 않는 자연 그 자체이다.
하지만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정말로 무모한 짓이다. 비포장에 계속 내리막이라 브레이크를 계속 잡아야 하고 비포장에 돌덩이가 산에서 떨어져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곡으로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 차량이 거의 없어 천천히 달리면 위험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터널을 달릴 때 차가 오면 앞이 깜깜하다.
먼지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히고 앞이 뿌옇다. 12km..
계속 60km 의 비포장을 달려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어느새 나에게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옥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계곡으로 떨어질것 같은 위험이 날 압도하니 아름다움이 적을 수 밖에
그리고 그것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난 아직 부족하다.
너무 힘든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온몸이 아프고 힘드니까 경로를 정한 에릭이 마냥 밉기만 하다. 잘되면 내 덕이고 일이 꼬이면 남의 탓이라더니,,,
하느님은 무심하시지 않으셨다. 죄 지은 것 많지 않다고 울고 있는 나에게 차량을 보내주었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Santa 도착. 그날 저녁
페루의 지진소식을 들었다. 이카 우리가 자전거로 갔었던 곳이다.
이카 지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어수선하고 그랬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 안타까울 뿐이다.
부모님과 시부모님, 가족, 친구들이 걱정 투성이였다. 바로 그날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니 초상이 났었나 보다. 운명이란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행운의 천사가 있다. 페루, 아니 온 세계에 천사가 지켜 주었으면 싶다.
대도시 Trujillo 도착. 대도시라 역시 불편한 것이 없어서 좋긴 하다.
편안한 잠자리, 좋은 음식.
러브호텔이자 일반 호텔. 방마다 차고가 따로 있고 5일간 쉬자.
에릭이 온몸 마사지도 해주고 하루는 오후 2시까지 잠자고 먹고 싶은 새우튀김과 고기도 배터지게 먹었더니 그 동안 힘들었던 일은 언제 있었던가 싶다. 사람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아니 내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Trujillo 근처에는 문화 유적지가 많다. Adobe 의 문화와 Cahn Cahn 등
실컷 쉬고 잘 먹고 구경 잘하고 앞으로는 터널과 비포장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떠난다.
그리고 온 세계에 자연재해가 없기를 빌면서..
2007년 8월22일 Truj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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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존과 북 페루의 유적지 (2007년 8월22일부터 2007년 9월20일까지)
Trujillo라는 도시에서 7일간 근교의 문화재 방문하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북쪽을 향해 달리니 마음이 새롭다. Panamericana 도로는 거의 평지이고 비상도로가 넓다. 오후에는 뒤바람까지 협조를 해준다. 하지만 많이 달린다고 해도 하루 80km. Chiclayo 라는 도시에 도착하기 전 조그마한Paiján마을에 도착했을 때다 . 마을을 들어갈 때 사람들의 반응이 마을의 분위기를 많이 좌우한다. 남자들의 야유가 아주 심하고 조금 격하다 싶다. 그 전마을에 숙소가 있었지만 너무 이른듯하여 달려왔건만 지도상으로는 크게 보이는 이곳에는 숙소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마침 도로의 경찰이 우리에게 오라는 손짓을 한다. 1달 전에 이곳에서 한 자전거 여행객이 완전히 털렸다고 한다. 그리고 1년 전에도 외국인이 피해를 입었다며 경찰이 호위를 해 줄 테니 조금 기다리랜다.그 경찰은 우리에게 조금 기다리면 동료 경찰이 와서 우리를 안전한 숙소에 데리고 가준다고 한다.
도로에서 만난 경찰은 너무 이것저것 사생활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소요되니까 순간 경찰도 남미에서는 믿지 말라고 했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는 순간 동료 경찰이 와서 우리더러 경찰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경찰차를 따라 가니 소리지르던 마을의 남자들이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인지? 신기해서인지 우리를 그냥 원숭이 쳐다보듯이 본다.
도로의 경찰은 Carretera Policia 이고 두 경찰은 우리를 마을의 경찰 Comisario에 데려다 주었다. 인수인계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관광객을 보호 해주는 것은 안전하고 좋은 일이지만 객관적으로 남미 사람들이 너무 서로에게 불신이 많은듯하다. 어딜 가나 자기 민족을 믿지 못하기보다 도둑놈 또는 강도로 관광객에게 알려주는 것이 조금 아쉽다. 그리고 그전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다가 그날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경직되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도둑으로 보이니 여행이 부자연스럽고 경직되어 버린 느낌이다. 불신이 불신을 초래한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또한 많은 남미사람들이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개별적으로 보면 정말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아마도 개중에 몇 명이 나쁜 짓을 한 것이 소문이 나서 위험지역으로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프랑크푸르트의 기차역 근처에서 관광객이 털리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남미, 게다가 시골에서 털렸다고 하니까 더 많은 유언비어가 도는 경향도 없지않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조심해야지!
에릭은 경찰에게 경호를 받으면서 여행을 잠깐이라도 한 것이 무지 재미있었다고 한다. 난 사실 그 지역을 벗어나면서 불안했는데 말이다.
우리를 잘 경호해준 도로의 경찰과 마을 경찰에게 감사할 뿐이다.
Chiclayo도시로 가는 Panamerika 길 . 자전거의 집이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네!
자전거의 집에 가면 다른 자전거 여행객들과 정보교환을 할 수 있음
Chiclayo도시로 진입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차량이 급증하고 일요일인데 의외로 번잡하다. 그리고 비상도로가 갑자기 좁아져서 한번은 혼자 쇼를 하면서 넘어졌더니 긴장된다.
시내중심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한남자가 내 옆으로 오면서 말을 건다.
“. 집중해서 자전거를 타야 하니 앞에 가는 남편에게 가서 이야기 하세요“
Ower 와 Aaron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두 남자는 에릭을 처음에 보지 못하고 나만 보고“
아니 여자 혼자 괴상한 자전거를 타고 간다, 도와주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고 한다. 덕분에 대도시에서 빨리 깨끗한 숙소를 찾아 쉴 수 있었다.
Chiclayo근교에는 Adobe 문화와 Sipan 황제의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2000년이나 오래된 무덤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현재 유적지 발굴 작업이 활발함. 무덤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 황제가 죽을 때 거느리던 부인과 물건들을 함께 매장한 그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
현재 10개의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신기하고 한편 조금 잔인하다는 느낌.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왕들이 죽을 때에 거느리던 시녀들과 물건들을 함께 묻었다는 그 풍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됨.
Sipan황제의 무덤 안
악어를 꼭 보아야 한다고 빡빡 우겨대는 에릭. 그 동안 내 고집만 계속 세워서 에릭의 욕심도 채워주어야 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악어를 보러 아마 존 밀림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자전거를 Chiclayo 라는 곳에 두고 12시간 버스를 타고 아마 존지 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여행은 정말로 지옥이다. 길은 산길이고 고불고불 에다 운전사는 인정사정 없이 커브 길을 돈다. 게다가 밤새 비는 쏟아지고 우리가 앉은 자리에 비까지 뚝뚝 떨어지고 정말로 끝장이다 라는 느낌이다. 밤새 얼마나 오바이트를 했는지 새벽 6시에 Tarapoto에 도착하니 기진 맥진하여 아무 생각이 없다.열대 지역에 도착했다. 날씨는 후텁지근하고 모터택시 소리에 귀가 따갑다.
갑자기 이렇게 기후 변동이 있으니 신체가 견디어 내기 힘들고 밤새 시달려서 눈이 쾡하니 꼭 인디오 족 모습이다.그런데 여기서 밤이나 새벽에 4시간동안 택시를 타고 Yurimaguas라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또 4일을 배를 타고 Iquitos에 가야지만 정말로 아마 존 열대 밀림으로 갈수 있다고 한다. 1년 전만해도 종일 Tarapoto에서 Yurimaguas 까지 차가 다닐 수 있었는데 도로 공사중이 라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다. 새벽 6시에 Yurimaguas 에 도착하니 아마 존 밀림으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는데 모험이 시작되는 구만
아마 존으로 가는 배.Iquitos까지는 4일간 타고 가야 한다.
잠은 헹거에서 자야 하고 꼭 헹거가 있어야 함
여행 가이드에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일단 배를 타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었는데 마침 Lagunas 지역의 관광가이드가 배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Lagunas 라는 곳에서 아마 존 밀림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마침 가이드가 다음날 카누로 4박5일로 아마 존 밀림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Iquitos의 열대 밀림 아마 존 보다 덜 자연이 손상되고 관광객이 적다고 한다. 4일 배를 타고 어떻게 가야하나 싶어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찌근찌근 아팠는데 Lagunas 까지는 12시간이라고 하니 일단 숨통이 트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4일 동안 배 안에서 그 환경을 이겨내면서 여행을 하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헹거는 필수 물품이고 다들 헹거에서 자야 하고 욕실과 화장실의 위생 시설은 엉망이다. 그리고 그릇과 숟가락도 가지고 있어야지 밥을 먹을 수 있다. 만약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배에서 살수 있다. 에릭은 4일 동안 음식을 얼마나 많이 샀는지 모른다. 2L의 물 5병에 과일에 빵에 배낭 한 개 용량으로 음식을 샀으니 굶어 죽지는 않으려나 보다. 다른 여행객이 밥이 영 아니라고 해서 음식도 많이 사고 했는데 예상외로 밥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밥을 타 먹는 것은 꼭 영화에서 보는 수용소 에서 밥을 타 먹는 그런 모습이다.
아마 존 Aypena 강의 지도
으악! 저 카누를 타고 밀림으로 들어간다고?
난 안가. 구명조끼도 없고 강에 빠지기라고 하면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카누라야 지만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동물을 놀라게 하지 않고 잘 볼 수 있다고 하니 배는 바꿀 수 없지만 구명조끼는 있어야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명조끼를 구하느라 온 마을을 가이드가 뒤져 겨우 한 개를 구했지만 끈은 거의 다 찢어 지고 그냥 빨간 천에 스티로폴을 넣은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환경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카누에 올라탔다.
앞에 한 사람과 뒤에 한 사람이 카누의 노를 젓고 에릭과 내가 중간에 앉는다.
처음부터 난 쇼다. 카누에 들어갈 때 미끄러져서 발이 강에 빠지고 난리를 칠 때부터 낌새는 이상하다 싶었다.
처음 몇 시간은 카누에 앉아서 강물에 휩쓸려 카누가 뒤집히면 어떻게 하지,“ 아니 내가 왜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고 이 카누에 앉았을까? 싶은 후회와 겁밖에는 나지 않았다. 그리곤 조금 지나니까 „ 운명에 맡기자“ 로 변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아마 존의 밀림을 살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 따가워,“ 모기도 아니고 이상한 곤충이 온 사방 옷에 달라 붙는다.
옷을 통과 하여 문다. 당연히 팔과 발목에 살이 보이는 곳은 막 물어댄다.
카누에서 움직이거나 설수가 없어서 수건으로 곤충을 죽이려고 애를 써도 얼마나 많은지 이길 수가 없다. 아프기 그지 없고 막 따갑다. 아마 존 강의 무서운 모기 일종이다. 모기 약을 발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시작이다 싶었건만 점심때 부 터 환경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요리하는데 나무를 잘라서 불을 지펴 요리를 한다. 이것은 신기하고 맛도 좋은데 밥을 강물에다가 끓이는 것이었다.
카누에 실은 물을 그냥 마시는 물이고 요리는 4일내내 아마 존 강물을 이용하여 한다고 한다.
„ 난 못 먹어,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굶을 수는 없고 기름에 튀겨주는 계란과 바나나만 난 먹었다.
4일 동안 어떻게 견뎌 낼 수 있겠지. 오후가 되니 모기에게 물린 곳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덥고 가렵고 난리다. 그리고 날씨는 비가 오고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비가 내리치고 큰 배가 지나갈 때면 카누가 출렁거리고 물이 들어온다. 가이드는 오늘만 넓은 강이고 다음날 부터는 조그마한 밀림으로 가기 때문에 배에 물 들어 오는 일이 없다고 겁내 하는 나를 위로한다.
강에서의 점심. 강물로 끓인 국수가 맛있다고 에릭은 쩝쩝.
6시가 되니 우리가 머룰 곳이라고 카누를 세운다.
아무것도 없다. 텐트에서 잔다고 해서 방가로나 무슨 시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강 옆의 밀림이다. 내 얼굴은 완전히 죽상에 겁에 질린 모습이다.가이드가 자란 나무와 풀들을 자르고 땅을 고른다. 땅을 고르더니 커다란 나무를 세 군데에 잘라 텐트를 치려고 한다. 텐트가 아니라 천막을 친다. 천막을 치고 땅에다가 플라스틱을 깔고 우리가 깔고 앉았던 얇은 침낭이 우리 침대이다. 그 위에다가 모기장을 해준다.
그 속에서 자라고 한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울 수는 없고 참느라고 혼자 강을 보면서 이일을“ 어쩜 좋지 어쩜 좋지“ 그 말만 되풀이 했다.
종일 해가 쨍쨍 나는 카누에 앉아서 화장실도 갈수 없었는데 밀림에 들어가서 실례를 해야 한다니. 그러다가 뱀이라고 보면 어떻게 하지.
환경이 열악할 때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난 환경이 열악하면 정신적으로 더 나약해지고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어 히스테리적이 되어 버린다.
점심때 먹은 계란 후라 이가 잘못 되었는지 배는 아프고 모기는 몰려 들고
정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혼자 그래 4일 견뎌 보지 뭐, 한번 원시인이 되어 보지 뭐 하는 생각이 들다가 , 아니야. 이건 모험이 아니라 무덤을 파는 거야. 난 못해 그런 생각이 더 앞선다. 난 뱀 보는 것이 제일 무섭다. 그런데 난 항상 남이 보지 않는 뱀을 본다.
어두워지니까 그 무서운 상상력이 더 동원된다. 이곳 저곳에서 동물 소리가 들린다. 모기장을 뜷고 야생 동물들이 와서 습격을 할까 봐 걱정 투성이다.
가이드가 2명이나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난 밤새 내 한잠도 못 잤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모기장을 어떻게 뚫고 들어온 모기 땜에 극적 거리고.
“. 당신 혼자 원시인이 되던지 말던지”.
에릭이 나의 의견에 완강하게 반대할 줄 알았것만 다행이 도 에릭 또한 카누에서 움직일 수가 없고 너무 후텁지근한 날씨, 곤충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4일만의 아마 존 원시인을 우린 이틀 만에 그만두었지만 후회는 없다.
누군가 „ 아마 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난 옷이 필요한 사람이라 아마 존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Yurimaguas 에서 Chiclayo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Chachapoyas 근교에는 또 방문할 곳이
많다고 하여 유적지 살피면서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에 또 한번 놀라는 계기가 되었다 .
Kuelap (900 bis 1100 n.C.) 유적지는 기원후 900년에서 1100년의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성곽이 3000Meter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고 집들의 모습이 거의 다 원형이며 예전에 400가구 이상이 살았다고 한다.
이름은 Karajía의 Sarkophagen ( 시체를 넣어 넣는 관)임. 사진에서 볼수 있는 것은 시체를 넣는 관이며 이 무덤관이 돌 벽 같은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며 이 일대가 묘지였다고 한다. (1000년전의 묘지로 추측).현재 6개의 관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데 선조들의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신비하다. 추측건대 신분 계층에 따라 관의 크기랑 장식이 다르다고 한다.
Karajía 의Sarkophage
복장이랑 등산화를 가지고 갔었더라면 Chachapoyas의 근교에서 승마도 하고 등반을 하였을 텐데 장비가 구비되지 않아 우리의 자전거가 기다리고 있는 Chiclayo로 10일간의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 자전거를 보니 다시 버스를 타고 Chachapoyas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살아졌다. 역시 자전거가 최고야. 멀미도 안 하지 .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지, 자전거로 떠나자.
Chiclayo에서 3일간 아마 존과 유적지 방문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떠나려고 하니 짧은 시간이지만 알게 된Ower 가 무지 서운해 한다. Ower는 조그마한 스포츠 의류 제조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본인이 기획한 자전거 티셔츠를 선물해 주었다. 남미 협찬 사로 처음이다.
9월13일 Chiclayo를 떠나는 날 Ower, Aron, Edwin 이 Tucume까지 함께 동행을 해 주었다. 세 남자는 MTB팀으로 자전거광임. 우리의 속도를 맞추어 준 것에 감사하고 계속 자전거를 열심히 탔으면 싶다.
Aron, Ower, 나, Edwin
Tucume를 지나니 사막의 연속이다. 간혹 나무가 보인 긴 한데 꼭 아르헨티나의 사막과 같은 분위기이고 무지 덥다. 낮에는 기온이45°C이고 마을에 도착하면 물도 귀하고 숙소도 없다.
막판에 고생을 하면서 페루와 작별하는 모양이다. Ñaupe라는 곳에서는 에릭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와서 몸을 대충 닦아야만 했고 숙소가 없어 마을의 회관에서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
다행이 도 에쿠아도르까지는 그리 먼 구간이 아니라 사막에서의 고생은 3일간 하고 9월20일 아쉽게도 페루와 작별해야만 했다.
티티카카호수, 쿠스코, 마추피추, 초케키라우, 나스카, 아마 존, 많은 유적지들, 좋은 사람들, 음악, 음식,,, 많이 많이 그리움이 남는다. 자전거로 힘들게 달린 페루이지만 토양이 나에게 다른 남미 국과 남달랐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방문하고 싶은 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