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entina 2005/2006
아르헨티나
Korea 2005
한국
Chile 2005
칠레
Bolivia 2006
볼리비아
Perϊ 2006/2007
Ecuador 2007
에쿠아도르
페루
Colombia 2007/2008
콜롬비아
download text with photos
download text
Part II
곧 만나요

잉카 잎차 ‘무냐’, 나를 살리다
와이나픽추 등반이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아니면 쿠스코에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타서 그랬는지 마추픽추를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오한이 시작 되었다.쿠스코에서 몸이 아팠던 것보다는 심하지 않았지만 3일간 항생제를 먹고 페니실린까지 복용을 했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다. 이번에는 조금 지겹더라도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 올란타야탐보는 흥미로운 곳이고 마추피츄마추픽추처럼 신비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아프기 시작한 지 4일째인데도 증상에 별 변화가 없어 갑자기 걱정스러웠다. 조그마한 곳이지만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알레르기 증상과 감기가 혼합되어 있으니 약초가 많고 봄에는 특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는 올란타야탐보를 떠나는 것이 좋겠단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떠나는 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몸에 힘이 쭉 빠져 누우려고 하니 호스텔 주인 아줌마 노에미씨가 날 부른다.

“Senorita, usted tiene Fiebre?”
열이 있냐고 묻는 소리다. 나의 증상을 이야기 하니 ‘무냐Muña’라는 잎차를 끓여 줄 테니 한번 마셔 보란다. 잉카인들이 마셨던 차라고 한다. 향이 은은하고 좋았다.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잤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몸도 거뜬하고 머리도 아프지 않고 정말 명약이 따로 없다 싶었다.노에미 아줌마는 차만 끓여 주는 것이 아니라 손수 음식까지 만들어서 주었다. 내가 아플 때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그런 간호를 받았다. 나는 8일간이나 병치레를 하면서 노에미 아줌마와 딸 밀라와 무척 친해졌다.올란타야탐보를 떠나는 날, 나와 노에미 아줌마는 서로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눈물을 닦다가 그러다가 또 웃다가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지구의 저쪽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이 이곳 페루하고도 올란타야탐보에 사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8일간 서로 마음을 나누다가 이렇게 울면서 이별을 슬퍼한다.
“노에미 아줌마 우리 다시 만나요. 밀라야 안녕
Peru02_002
호스탈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마추픽추보다 오래되고 큰 잉카 유적지 초케키라우
가장 오래된 잉카유적지가 있단다. 마추픽추보다 규모도 크고 오래된 곳인데도 아직까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구라와시의 숙소에 짐을 두고 그 잉카 유적지를 4박 5일간 트레킹 하기로 했다. 짐은 당나귀에 싣고 말을 타고 떠나는 4박 5일이니 기대도 많이 된다. 차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없고 별 보며 달 보면서 그리고 물도 없어서 강물을 이용하여 세수를 하고 화장실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단다.우리는 당초 당나귀만 빌려서 둘이 4박 5일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당나귀에 짐을 싣는 것을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잘 길들여진 당나귀이지만 짐을 올리고 또 싣는 것이 쉬운 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나귀의 눈을 가리고 짐을 올린 후 꽉 묶어서 고정을 시키는데 우리 둘이서 당나귀만 빌려서 출발했다간  하루 종일 당나귀 등에 짐 싣느라 하루를 보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Peru02_009
드디어 당나귀와 투어를 시작하다


우리의 첫날 등반 거리는 약 20킬로미터. 약초 냄새를 맡으면서 걸어가는 길의 느낌이 나쁘지 않다. 차가 한대도 다닐 수 없는 길이라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사람들도 한 명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나와 에릭, 당나귀, 그리고 가이드뿐이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 싶었건만 간혹 집이 한두 채 보이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이 200명 이상은 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고민은 교통수단이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말과 당나귀뿐인데 사람이 갑자기 아프거나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튿날 6시에 기상. 더 자고 싶어도 닭과 새들이 울어대고 늦게 떠나면 더위에 등반길이 힘들기에 7시에 준비를 마치니 벌써 해가 쨍쨍 내리 쬔다. 로사린다Rosalinda에 도착하여 아이푸막강을 건너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짐 하나 없이 카메라 가방 만 하나 달랑 들고 가는 것도 힘든데 어떤 외국인 관광객은 배낭을 짊어 매고 산길을 올라가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싶다. 한 두 시간을 걸으니 사탕수수로 만든 시원한 치차를 마실 수 있다.나는 스스로 등산에 숙달이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이곳 등산로는 워낙 가팔라서 평소보다 힘이 두세 배 더 든다. 발가락이 아파오니 경치구경은 고사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해발 3000미터 높이를 등반했고 그곳에서 산속에 꼭꼭 숨은 목적지 초케키라우 유적지가 보인다.멀리서 바라보니 한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것 같은데 아니란다. 앞으로 3시간은 더 가야하고 다음날 아침은 되어야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캠핑장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보름달이 둥실 떠오를 때 잉카 유적지를 보고 기도를 올리니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드리니 환상이다.
초케키라우에서 잉카의 정기를 잔뜩 받고 돌아와서 보니 엄지와 새끼발가락에 감각이 없는데다가 새끼발가락에는 피멍이 맺혔다. 에릭은 종아리 근육에 무리가 가서 이틀 동안이나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호스탈의 페루 사람이 놀린다. 왜 돈 주고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글쎄요? 고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우리들은 즐거운 고생을 사서 한답니다
Peru02_011
초케키라우로 가는 험하고 신비로운길

Peru02_015
신비스러운 초케키라우의 잉카 광장



흙과 돌을 던지는 아이들, 성기를 자랑하는 아저씨
이번 여행을 통틀어 자전거를 타고 가장 높은 고도를 올라야 하고 또 내려가야 하는 날이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과연 하루에 해발 1300미터를 올라갔다가  1200미터를 내리막으로 달릴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다행히 구라와시 등반으로 몸은 더 강해졌고 정신적으로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구라와시를 벗어나자마자 오르막이 시작된다. 사이위테Saywite까지 길은 꼬불꼬불 계속 이어지며 오르막이 계속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는데 여자아이 두 명이
“무슨 일이야? Qué pasá?” 아주 극성스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나 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자전거를 세우란다. 조그마한 시골아이들이 순진한 맛이 하나도 없고 마치 강도 같은 행세를 하니 우습기도 했다. 아이들의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안녕?Chau”이라고만 해주었다. 대부분 시골 아이들은 자전거를 막 따라오면서 트레일러에 매달리거나 태극기를 때려고 하거나 아니면 돈이나 뭘 달라고 하는데 이럴 때는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Peru02_016
1200미터를 오르락, 내리락, 휴!


일흔 한 살에 자전거 남미 종주 하는 게리 할아버지
페루에서는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종종 자전거 여행객을 만나 함께 달리기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는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짐을 주렁주렁 단 자전거를 탄 사람이 식당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급히 달려가서 아는 척을 하니 자신은 미국에서 왔으며 엘살바도르에서 출발하여 6개월간 여행 중이고 최남단 우수아이어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란다.처음 볼 때부터 아저씨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긴 했지만 대화를 하면서 나는 깜짝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아저씨의 올해 나이가 자그마치 일흔 한 살이란다. 아저씨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세 명이었는데 다른 두 사람은 게리 아저씨보다 젊고 템포가 빨라서 도저히 맞추기가 힘들어 이제는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아저씨는 놀랍게도 가이드북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그냥 지도 보고 느낌으로 달리신다고 하면서 앞으로 일흔 세 살이 될 때까지 여행을 하신단다. 아저씨는, 아니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는 거의 한마디도 못하고 그동안 몸짓 발짓, 바디 랭귀지로만 돌아다니셨다는데 참 그 용기가 대단하시다.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할아버지가 방문하신다고 하여 에릭은 오후 내내 이것저것 자세히 정보를 알려주느라고 정신이 없다. 여자들이 만나면 수다를 오래 떤다고 했는데 그날은 할아버지와 에릭이 대단한 수다를 떤다. 거의 네 시간에 걸쳐서 지도 를 보면서 서로 이야기 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관심사가 같으면 정말 나이와는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할아버지는 에릭에게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일에 행복해 해야 한다며 강조하셔서 나는 할아버지가 더욱 고마웠다. 할아버지는 다른 여행도 좋아하지만 등산은 무릎이 아파 할 수가 없고 젊었을 때부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자전거로 남미 대륙을 달려 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영어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와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혹시나 할아버지가 아프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지만 할아버지는 페달을 돌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꼭 우리 아빠가 지금 혼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분이 들어 더욱 걱정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는 가슴이 찡했다
. “할아버지! 언제나 건강하게, 재미있고 오랫동안 추억에 남는 여행되세요
Peru02_021
72
살의 게리 할아버지, 알라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그의 꿈을 향하여



피라미드에 비유될 만큼 신비한 나스카Nazca 선
외계인이 그려놓은 듯 신비한 나스카 선을 보려면 오전 8시 전후 또는 오후 3시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한다. 경비행기를 타면 멀미가 심하다고 하여 일부러 아침도 거르고 물 한잔 밖에 마시지 않았다. 혹시나 구취가 날지 몰라 사탕도 하나 입에 물었다.  전날 예약을 할 때는 분명히 3명이 타는 조그마한 경비행기라더니 5명이 타야 된단다. 약간 싫은 표정을 하니 친절하게도 어제 예약을 받은 여자가 눈짓을 하면서 3명이 타는 비행기를 마련해 줄 테니 기다리란다. 한 20분 걸리니까 한명이 더 오게 돼서 모두 세 명이 경비행기에 올랐다. 나스카 선은 아직도 신비의 선으로 알려져 있고 여러 가지 문양을 하늘에서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파울 코속)Paul Kosok라는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씨가 50년을 넘게 연구하였다. 나스카 문명은 잉카문명 이전인 기원전 300년에서 서기 700년경에 이루어진 문명으로 추측된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 5분 정도 되니 고래모양이 보였다. 꼭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다. 모래 위에 아주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처럼 말이다. 트라이앵글, 원숭이, 천문학자, 독수리, 개, 손, 나무 등 모두 열두 가지의 문양이 사막의 모래 위에 펼쳐져 있다. 정말 신기할 뿐이다.
조종사가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사진을 촬영하라고 기체를 움직여 주었다. 처음 네 가지 문양은 신기하기도 해서 정신을 집중해서 감탄사를 터뜨리며 지켜보았건만 그 다음부터는 속이 좋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려서 나는  아침에 마셨던 물까지  토해내야만 했다. 토하면서 보니 입에 물었던 사탕이 파란색이라
  ‘파란 사탕물’ 이 나온다. 정신없이 토하면서도 나는 45분간의 비행을 최대한 즐겨보려고 노력했다. 온몸에 땀이 흐르면서 기진맥진하면서도 구토용 봉투를 입에 물고  신비의 나스카 선을 모두 지켜보았다. 바람과 같은 기후변화로 그 모습이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 그대로라고 하니 마냥 신비할 뿐이다. 신비의 나스카 선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견될 만큼 신비한 장소다.
신비의 나스카 선,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Peru02_019
우리의 조종사

 
Peru02_020
나스카의 신비스러운 새의 문양


홈볼트 펭귄이 사는 이슬라 발레스타 섬
파라카스Paracas에서 배를 30분 타고 가면 이슬라 발레스타Islas Ballestas를 방문할 수 있다.  자연국립공원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태평양과 물개나 새 등을 본다는 기쁨 보다
‘홈볼트 펭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이게 한다. 카메라에 펭귄을 아주 예쁘게 담아야지 마음먹고 사진 찍기 좋은 배 앞에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말고도 약 30명을 태운 배는 점점 더 스피드를 내며 이슬라 발레스타로 우리를 안내한다.아치형의 모습들, 예수님,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자연암석들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들이 많다. 온 섬이 까맣게 보이는데 검은 것은 전부 새들이다. 펠리칸, 갈매기, 잉카새, 주둥이가 빨간  새 등등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너무 많다.그리고 냄새가 나는 물개도 많다. 물개수컷을 페루에서는 마초물개라고 칭하는데 가끔 하품을 하면서 관광객에게 방문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한다. 그동안 물개와 새들은 그럭저럭 많이 보아서 펭귄과 고래를 볼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다. 예전에는 이곳에 펭귄이 많았는데 지금은 에쿠아도르 쪽으로 많이 이동해갔다고 한다. 펭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우려도 되었지만 곧이어 가이드가 “홈볼트 펭귄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두 마리의 펭귄커플이 서로 등을 긁어 주는지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펭귄들도 몇 마리 눈에 뜨인다. 처음에는 펭귄이 너무 작아서 새의 일종인줄 알았는데 홈볼트 펭귄은 아주 작고 귀여운 펭귄이었다.
남극처럼 펭귄이 많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많은 펭귄이 보이지는 않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에 있는 물개와 새를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도  물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지. 물개는 추운 곳이나 더운 곳이나 지독한 냄새는 여전하다. 가이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암석에 앉아 있는 물개를 이렇게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섬뿐이라고. 나는 혼자 피익 웃었다. 칠레의 발디비아와 가그밖의 여러 곳에 가면 항구에 널린 것이 물개인데… 하긴 섬에 사는 물개들이 항구에서 사는 물개보다 우아해(?) 보이는 것이 차이점이긴 하다.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드디어 투어가 끝났다. 이제 배는  속력을 내서 파라카스로 되돌아간다고 하는데 혹시 운이 좋으면 고래를 볼 수도 있단다. 나는 물개 냄새로 인한 멀미를 바다바람으로 달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뭔가 오르락 내리락 꼬리 같은 것이 보인다. 저게 뭘까?고래다. 고래 가족인지 모두 4마리 정도가 보인다. 우리를 태운 배는 시동을 끄고 조용히 고래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가이드가 다들 조용히 고래를 보라고 한다. 고래의 우아한 움직임, 빠르고도 유연하다.신비한 문양도 보고 펭귄과 고래도 보고… 만족하며 파라카스의 항구에 도착하니 우리가 다시 돌아와서 반가운지 펠리칸들이 소리 지르며 우리를 환영한다.

Peru02_032
파라카스섬을 자전거로 돌아보자


Peru02_029
서로 등을 긁어 주는 홈볼트 펭귄


슬픈 자전거
독일과 한국을 7개월 동안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자전거 운송 문제와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독일에 두고 온, 지난 번 여행 때 사용했던 자전거를 가지고 한국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 때 사용했던 자전거는 페루에 두고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자전거를 보관할 곳? 일단 안전한 곳을 물색해야만 했다. 신부님이 계시는 곳에 둘 까? 아니면 호텔?  한인회? 대사관?  여러 군데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는 예전 직장인 KOTRA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에 계시는 김평희 팀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김팀장님은 내가 코트라에서 근무할 때 상사분이셨다. 김팀장님은 우리가 리마에 도착하기 전에 리마 무역관 김종경 관장님께 이 메일을 드렸고 우리가 전화를 하니 김 관장님께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테니 걱정말고 자전거를 무역관으로 가져 오라고 하신다.어느 나라에 가던 우리나라 기업체가 나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었던 회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꼭 오래된 친구나 친정 식구를 만나는 그런 기분이다. 무역관은 페루 시내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있고 적지 않은 바이어들이 무역관을 방문해 안내자료를 받고 있었다. 무역관 창고는 자전거를 조립하지 않고 들여놓기에 조금 좁은 장소이긴 했지만 우리는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이곳에서 보관하기가 어려우면 아무래도 호텔에 보관하기가 쉬울텐데 6개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자전거를 창고에 두고 나오면서 괜히 마음이 찡하고 묘한 기분에 빠졌다. 매일 나의 분신처럼 함께 다녔는데 저렇게 창고에 둬야 되니 말이다. 괜히 눈시울이 뜨겁고 슬퍼졌다. 항상 멋지게 보이던 자전거가 갑자기 왜 그리 초라하게만 보이던지. 자전거가 나를 보면서
“나도 데려가 줘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자전거야, 자전거야 사랑스런 나의 자전거야! 6개월만 기다려 주렴. 그러면 우리 다시 만나 멋진 여행을 떠나는 거야. 안녕 내 빨간 자전거야
Peru02_034
리마KOTRA  직원들과 함께
to the top